夜야인시대 – 이상각 교수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의 명예교수님이신 이상각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원로 천문학자중 한 분이시며, 여성 천문학자로서도 선구자적인 위치에 계십니다. 이번 호에선, 별빛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서, 당시로는 드물었던 여성 과학자로서, 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교수님께서 걸어오신 길에 대해 들어보고, 우리들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지 여쭤보았습니다.
이상각 교수님과 천문학
교수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천문학을 공부하시게 되었나요?
지금도 문과, 이과 갈라지죠? 그 시절에도 고등학교 때 문/이과로 갈라졌는데, 이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문학적인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수학 같은 이과 쪽 과목들을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이과 과목 중에서도 화학과 생물은 암기할 과목이 많아서 싫어했어요. 그러다 보니 물리를 선호하게 되어 물리학과를 가려 했는데, 아버님께서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다루는) 물리가 너무 사람 마음을 좁게 만든다. 비슷한 학문이니 천문학을 하는 게 어떻겠냐.’ 라고 말씀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천문학을 하게 됐습니다.
교수님께서 대학을 다니시던 시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67년도에 서울대 천문기상학과에 입학했어요. 소련에서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올린1 이후 국가에서도 천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계기가 되어 1958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천문기상학과가 만들어졌어요. 당시엔 천문에 현정준 교수님과 기상에 김성삼 교수님, 이렇게 두 분만2 계셨지요. 그 당시에는 교재를 외국 서적을 가져다 썼는데 천문학의 경우는 책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 복사기, 지금 같은 복사기가 아니라 누런 시험지 종이를 등사판에 밀어서, 복사한 것으로 공부했지요. 당시에 천문학과엔 영국산 굴절망원경이 한 대 있었고, 제가 졸업할 즈음 대일 청구권을 통해 16인치 망원경이 들어왔어요. 그러나 여건이 허락하지 못해, 한 번도 망원경을 직접 들여다보고 관측한 적이 없어요. 실제 관측은 한 번도 안 해보고, 사실상 책을 통해 이론으로만 공부한 것이지요.
최근에 어떤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최근에 와서는 고분산 분광기3를 가지고 일을 많이 했어요. 주로 (항성의) 함량연구와 같은 일을 하게 되는데, 지금도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도해 줄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미시건 대학에서 1970년대부터 대물 프리즘 분광기를 장착한 망원경을 남반구에 있는 칠레로 옮겨놓고 거기서 남반구 하늘 전체의 스펙트럼4을 찍었어요. 그리고 (여기 있는 별들을) (온도와 밝기로) 분류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남반구 천체 목록이 낸시 후크(Nancy Houk) 라는 여성 천문학자의 일생일대의 업적이에요. 학회에서 우연히 제가 그 분을 만났는데, 당시 우리 대학의 정밀 스캐너를 활용하려고 건판이 좀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후크 교수가 곧 퇴임하는데 (하늘을 찍은) 건판들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그쪽 대학에서는 건판을 다른 곳으로 옮기길 원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20분짜리 건판들과 4분짜리 건판 중 20분짜리를 2003년에 한국으로 장기 대여 형식으로 가져왔어요. 그렇게 가져온 건판을 전부 스캐너를 이용해 전산화했어요. 이제 해야 될 작업은, 각 별의 분광정보를 전산화 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거죠. 이제는 이 자료를 컴퓨터를 통해 자동으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여성 천문학자로서의 삶에 대하여
여성이기에 천문학 연구가 더 힘들었던 점이 있을까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네트워크가 형성이 안 되는 것이죠. 보통 남자들은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서로 조언을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죠. 그 외엔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관측은 밤에 하긴 하지만 그건 남자들도 다 똑같이 하니까. 특히 외국에서는 여자라 문제될 건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우리 한국에서는 밤에 나가서 관측하고 오고 이러니까 이상하게 볼 수는 있지. 의외로 프랑스에서는 일찍부터 여성천문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어요. 미국도 동등할 정도로 숫자가 비슷할 정도로 많지는 않았어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꽤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하는 건 없었어요.
천문학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5이 있었거나, 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운이 좋게 대학이란 데를 들어왔기 때문에, 대학은 어떤 여건만 되면 그냥 승진하잖아요. 다른 직장에서는 승진하는 데 상당히 문제가 될 거에요. 물론 대학에 취직하게 될 때가 문제일 수 가 있는데. 운이 좋게 제가 오기 몇 년 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 공개채용을 했어요. 그 때부터 이러이러한 요건 되는 사람들은 지원하라고 공고를 내고, 지원한 사람에서 제일 선호하는 사람을 뽑는 거죠. 제가 지원했을 때는 지원자가 저밖에 없었어요. 때문에 쉽게 채용이 된 거지요.
정부에서 각 대학에 여성(교수)들의 비율이 여학생에 비해서 굉장히 작다 하여 여성교수 TO를 따로 준 적이 있었어요. 지금 대학에 여학생 수는 굉장히 많잖아요. 그 때 여성들이 조금 많이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런 여건에서조차도 어떤 대학에서는 여성 교수를 안 뽑겠다는 분위기가 남아있었어요. 그게 한 10년 전이니까 이젠 또 많이 바뀌었겠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에 유리천장이 진짜로 있다는 거죠. 연구소도, 그쪽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확실히 그럴 수 있죠. 사실 지금 연구소 중에 여성연구자가 굉장히 많이 있는 곳도 있지만, 그에 비해서 연구소 소장과 같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여성 숫자는……. 여전히 유리천장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보는 거죠. 대학에서도 (학장이나 총장과 같은) 보직교수에 여성 교수 참여가 여전히 적어요. 앞으로 개선될 거라고 생각해요. 천문학은 조금 더 개방적이에요. 천문학 하는 분들이 훨씬 좀 더 넓은 걸 다뤄서 그런지,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개방적이에요. 뭐라 그럴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고등학교 이과에는 여학생 수가 적고, 대학에서도 이공계열에는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이 훨씬 많습니다. 왜 이공계열에 이런 성비 불균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엄마들의 영향이 큰 거 같아요. 가정에서 교육할 때 아빠엄마가 다 같이 교육을 하는 게 좋은데, 우리나라는 요즘 모든 가정교육이 엄마에게 치우쳐져 있잖아요. 엄마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생각이 들어요. 그 엄마들이 옛날에 과학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게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본인이 그쪽으로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 그쪽으로 유도해줘야 하는데, 그런 경우 어쩌면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이런 게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남학생의 경우는 다르겠지요.
과학자에게 가정이란?
교수님께선 결혼도 하시고 자녀분도 양육하셨는데, 연구와 병행하시기에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그 당시 여성이 일하고 그런 거에 대해선 사회에서 좋게 보지 않았었어요. 우리 애는 유치원에서 행사한다고 그러면 내가 시간이 안 되니까 우리 동서들 다 동원해서 가라 그러고, 국민학교 때도 그렇고, 그런 육아 문제들이 가장 힘들었죠. 우리애는 거의 뭐 혼자 자란 거라고 얘기 하면 될 거 같아요. 연구에서 고충은 시간이 부족한 것인데, 저는 그런 생각은 했었어요. 제가 슈퍼우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한 70%만 하면 만족하자 이런 생각을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요.
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은 “과학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학생들이 롤 모델로 삼는 몇몇 과학자들이 가정을 거의 돌보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해 업적을 남겼기 때문인데요. 교수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문학을 하면 알겠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정말 먼지같은 순간을 살고 지나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뭐를 그렇게 남기려 그럴까요. 하는 만큼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그 “열심히”란 것이 글쎄,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사람이 누구나 다 100세를 산다고 그랬을 때, 뭐든지 다 해보고 싶지 않은가. 한가지에만 몰입해서 뭔가를 남겨놓고 간다? 그것도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뭐 노벨상을 목표로 자꾸 학생들한테 주입시키는 거는,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즐거워서 그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까 되는 건 모르지만. 뭐, 즐거워서 하다보니깐 결혼을 못한 거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걸 목표로 삼아 다른 건 다 포기하겠다는 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뭐 한 가지는 알고 다른 면은 모르는 거 아닌가요. 연구자가 꼭 이래야 한다는 이런 거는 없습니다. 뭐든지 노는 것도 젊어서 놀 때 놀아야 되고 공부도 젊어서 해야 되고 젊어서는 뭐든지 다 열심히 해야 되요. 늙어서 뭘 하겠다 생각하면 그 때 가서는 안 돼요. 예를 들어서 늙어서 피아노를 치겠다, 그래도 암만 쳐도 안 돼요. 젊어서 조금 치면 늙어서도 그냥 다 기억나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걸 접어놓고 이것만 하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기회가 오는 대로 열심히 뭐든지 다 하세요. 그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매일매일 최선의 일을 하는 게, 그게 후회가 없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교양과목6을 가르칠 때 여기 인문계열 학생인데, 글쓰기 숙제를 내줬었어요. 근데 그 글쓰기에 자기는 (지금까지 알았던 것과는 다른) 황당한 내용을 듣게 되어가지고 너무 혼란스럽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거를 보고 혼란스러웠어요. 너무 놀란거에요. 아 이런 학생들도 있구나. 그거를 보니까 학생은 물론 일반인들이 깊게 알지는 않더라도 천문학에 대해 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죠. 일반인을 위한 책이 조금 어려웠나? 너무 재미가 없었나? 그럴 수도 있죠.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용어가 생소하고. 그래서 천문학계통의 교수님들이 보다 더 쉽게, 재밌게, 그런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것도 쓰는 게 어떤가,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매일매일 생활하는데 우주랑 관련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점점 관련이 있어지잖아요. 옛날에는 태양의 활동이 우리한테 아무 영향도 안 주던 것이, 이젠 전기가 두절될 수도 있는 사건들7이 생기니까 우주 예보 등을 시작한 거란 말이죠. 앞으로도 시대가 변하면 다른 문제들이 생길 수 있을 거고. 과거엔 영향을 안 받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내용들이었겠지만.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은 화성에 간다고 그러는 상황에서, 화성을 우리가 왜 가느냐 하는 그런 사람들도 물론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옛날에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들을 항상 개척해나가는 거란 말이죠. 하루하루 생활하는데 우주가 무슨 상관이냐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여기 우리 몸에 있는 물질들이 다 별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얘기해주면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죠. 그런 정보들을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1.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국제표준시 기준 1957년 10월 4일 발사되었다.
2. 현재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는, 현직 교수님 12분과, 이상각 교수님을 포함한 명예교수님이 5분 계신다.
3. 색깔이 다른 빛은 파장이 다르다. 무지개처럼 빛을 파장별로 나눠서 보게 되면 빛을 내는 물체의 화학적인 구성물질을 알 수 있다. 분광기는 연구를 위해 빛을 파장별로 나누는 도구다. 대표적으로 프리즘, 회절격자 등을 사용한다.
4. 분광기를 통해 본 빛, 즉 빛을 파장에 따라 나눈 것을 스펙트럼이라고 부른다.
5. 유리 천장이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을 막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차별과 부조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6. 서울대학교 교양과목 “인간과 우주”는 이과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천문학 교양과목이다.
7. 1989년 3월, 태양 폭풍에 의해 캐나다의 퀘벡 주 일대에 대정전(blackout)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