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에게 다가가는 천문학자,
이석영 교수를 만나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천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석영 교수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석영 교수는 예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NASA에서 근무한 뒤, 옥스퍼드 대학을 거쳐 현재는 연세대학교에서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신성의 후예>,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의 저서를 집필하고 방송 등에서도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천문학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인기는 이번에 우주라이크에서 이석영 교수를 인터뷰하겠다고 Facebook 페이지에 글을 올리자마자 많은 애독자들이 질문을 올려주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시간상, 지면상 모두 싣지는 못하고 몇 개의 질문만을 추려 인터뷰를 진행하다.
“교수님께서 본인을 소개하실 때 클래식을 이용하셨더라고요”
- 어떻게 자기소개를 부탁해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클래식을 이용해 본인 소개를 하신 것1) 이 인상 깊었던 이수빈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자기소개 아닌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던 이석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거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 본인을 잘 소개하기 위해 구성을 한 건데, ‘천문우주학과 교수입니다.’라고 끝내면 본인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전달한 것이 아니잖아요. 조금 구태의연하다고 해야 하나? 자기소개를 할 때는 본인의 직업도 중요하겠지만 취미나 신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이것을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가장 많이 달린 질문 중 하나다. 왜 천문학을 선택했는지, 왜 천문학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특히 지금도 진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들을 해주셨다.
꼭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기보다는 정말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어요. 구체적으로 과학자가 되는 것이 뭔지 알았던 것도 아니고, 알아보는데 노력도 안 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주도면한 사람은 아니었네요. 저는 구체적으로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천문학이 재미있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재미있는 직업인 천문학자로 계속 지내기 위해서는 박사를 따고 포스닥을 가는 보통의 코스가 있잖아요. 교수가 된 것도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고 그저 이러한 단계를 밟은 사람들이 교수가 된 것이죠.
“그럼 어떠한 과정을 거치신 건가요?”
저는 막연하지만 남이 들으면 구체적으로 들릴법한 그런 계획이 있었네요. 어릴 때 예일대학에 유학을 가고 싶었고 또 NASA에 가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기는 했지만 정작 그 꿈을 가졌을 때는 예일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어요. 단지 초등학교 때 읽었던 신문기사에 세계의 대학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소개된 예일대학이 너무 감명 깊게 남더라고요. 나중에 학위도 받아보고 하니까 예일대학은 천문학에 있어서 좋은 대학은 아니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예일대에 리처드 라슨이라는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분의 제자가 되지도 못했죠. 결국 원하던 것과 다른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우연히 알게 되고, 계획 없이 막연히 가고 싶었던 거죠. 당시에는 구체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지나고 보니 목표를 이룩한 것도 신기한데 또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네요. 정리하자면 기획이 있지는 않았고 단지 막연한 동경과 희망이 있었던 거네요. 결국 꿈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지나고 보니까 구체적이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못한 신기루 같은 희망이었어요. 운이 좋아서인지, 삶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기루 같은 희망이 결국 사람에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대학원 때 원하신 분야와 다른 연구를 하셨다면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 리처드 라슨이라는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자 했어요. 라슨은 은하 형성 이론에 대해 연구를 했고 저도 그 분야에 관심이 있었죠. 그런데 정작 유학을 갔다니 연구비가 없어서 학생을 안 받는다고 하시네요. 그렇게라도 하고 싶으면 몇몇 연구는 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재미도 없어 보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어요. 다행스럽게도 제게 관심을 보인 다른 교수님이 계셔서 그리로 갔어요. 저는 다른 연구실에서 은하의 분광학적 진화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박사학위를 마치고 첫 직장을 NASA에서 근무했죠. 그 안에서 제가 옛날에 관심을 가졌던, 어떻게 보면 첫사랑이었던 은하 형성 이론학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박사과정 때 진행했던 연구가 학계에서 꽤나 인정을 받던 중이었지만 1~2년 정도 더 하다가 그만둬버렸죠. 이후 15년간을 은하 형성이론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의미가 있는 논문을 내기까지 9 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고작 3년 전의 일이네요. 지금은 결국 옛날에 리처드 라슨이 하던 논문과 상당히 관련이 많은 내용을 연구하고 있어요.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천문학을 끝까지 하게 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건가요”
내가 판단하기에는 조금 힘든 일이네요. 내가 지금까지 오는데 도움이 되었던 요소가 있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게 있네요. 주변의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희망이 있고 이를 지켜나간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아는 것이니까 그 과정을 달게 받은 거죠. 강한 사람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고 오래 남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동료에 비해 학문이 뛰어났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오랫동안 꿈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했던 거죠. 제가 아닌 그만둔 사람들을 만나봐야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진로를 결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이 있으신가요”
- 천문학이 내게 잘 맞는 일인가. 과연 내 적성이 이곳에 맞는 것인가. 천문학으로 진로를 결정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해 이석영 교수는 천문학에만 한정 짓지 말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세상을 살면서 본인의 재능을 일찍 알고 연습하면서 직업으로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수학 잘하는 여부에 따라 이과 문과가 나눠지는 거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인의 재능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할 객관적인 기회를 학생들은 받지 못 합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직업이 더 좋고 더 편해 보이는 것들만 보이지 어디서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는 거예요. 주변에 백 명 중에 한 명도 이런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냥 다른데 보다 좋겠지 하면서 위안을 삼겠죠. 그렇다면 직업관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면 행복감이에요. 직업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생각해도 후회는 안 할 수 있게요. 자기 소양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더라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했으면 어떨까요. 김연아처럼 일류 피겨 스케이터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게 정말 재미있다면 동네 피겨 강사를 하더라도 즐거움을 얻고 기쁨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것이 정말 재미있다면 나중에, 언젠가 본인은 시인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후회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먹고사는 고민을 하면서 천문학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 것을 고민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천문학이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오는 겁니다. 먹고사는 생각보다 하고 싶다는 것으로 진로를 정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천문학을 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이석영 교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천문학의 유일한 문제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후회하거나 하는 일은 없고요, 너무 재미있어서 현실을 등한시하거나 직시하지 못하는 문제는 있네요.”
이석영 교수가 천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마지막으로 꺼낸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가 하는 연구는 누가 잘 살자고 하는 연구가 아닙니다. 인류를 위해, 인류의 이름으로 하는 연구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연구가 너무 좋고, 우연히 들어온 분야 중에서는 정말로 멋진 곳이며 멋진 학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