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efreepark.tistory.com/m/post/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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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통찰 사이에서 우주를 노래하다.

여기 한산한 오후 시간, 몇명의 승객이 지하철을 타고 있다.

다음 역에서 한 명의 승객이 이 칸에 탑승한다면, 어디에 앉을지 알 수 있을까?

 

그림 속 지하철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의 자리 수를 세어보자.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자리의 수가 조금씩 증가한다. 1개, 1개, 2개, 4개. 1을 두배하면 2가 되고, 다시 2를 두배하면 4가 된다. 따라서 다음에 앉을 사람은 4에 2를 곱한 8개의 빈자리를 두고 그 옆에 앉을 것이다?!

 

지하철에 탑승하는 승객들은 특별한 이유나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앉는다. 바로 옆에 사람이 없는 자리를 선호하는 등의 어느 정도의 ‘원리’라고 할만한 껀덕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굉장히 터무니 없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행성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유난히 넓은 간격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태양계 대표 행성 화성과 목성.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우주에서 가장 어색한’ 행성이었다. 태양계 안쪽 수성에서부터, 금성, 지구 그리고 화성까지 이 네개의 행성이 태양 주변을 맴도는 궤도의 크기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고 비슷비슷하다. 각 행성의 궤도의 반지름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목성의 궤도는 화성에 비해 갑자기 아주 크게 늘어난다. 조화롭게 디자인된 우주를 상상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화성 궤도와 목성 궤도 사이 갑자기 텅 빈 공간은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성은 화성에 비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주기와 궤도의 크기의 수학적 관계를 밝혀냈던 천문학자 케플러 역시 이런 태양계의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주의 조화를 바랬던 그는 그의 책에 소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제안을 남긴다.

 

나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 너무 작아서 우리가 볼 수 없는 행성을 하나 둔다.”

Between Jupiter and Mars I placed a new planet, which were to be invisible on account of their tiny size.

 

당시까지 관측되지도 않았던 가상의 행성을 굳이 그 자리에 놓아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화성과 목성 사이의 간격은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케플러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화성과 목성 사이의 간격은 많은 천문학자들의 원성을 샀다. 물리적으로 이런 넓은 빈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답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숫자놀음, 법칙이 되다.

1766년 어느날 독일의 한 남자는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그는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위에서부터 하나씩 순서대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옆에 태양으로부터 그 행성이 떨어진 거리를 써넣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1이라고 할 때, 같은 비율로 다른 행성들의 궤도 반지름을 계산해보면, 첫번째 행성 수성은 태양에서부터 0.4만큼 떨어져있다. 그 다음 두번째 행성 금성은 0.7만큼, 그리고 세번째 행성 우리의 지구가 1만큼 거리를 두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맴돌고 있다. 그리고 다음 네번째 행성 화성은 1.6 정도 떨어져있다.

 

그 남자는 그 숫자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각 행성 사이의 거리의 차이를 다시 옆에 써넣기 시작했다. 태양에서 금성까지의 거리 0.7은 수성까지의 거리 0.4보다 0.3만큼 크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 1은 금성까지의 거리 0.7보다 0.3만큼 크다. 화성까지의 거리 1.6은 지구까지의 거리 1보다 0.6만큼 크다. 순서대로 이 차이값들을 읊어보자. 0.3 그리고 0.3 그리고 0.6이다. 0.6은 0.3의 두배가 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숫자놀이를 하던 중 그는 굉장히 과감한 제안을 하게된다. 혹시 행성들이 어떤 거대한 법칙대로 놓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어이없는 제안을 떠올린 남자는 독일에서 수학 교수로 일하던 티티우스 (J.D. Titius)였다. 물론 그도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크게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베를린 천문대의 천문대장 보데 (Johann Elert Bode)에 의해 다시 발굴된다. 보데는 티티우스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굉장히 저돌적인 제안을 하기에 다다른다. 이 법칙은 지구, 화성을 넘어 목성, 그리고 태양계 모든 행성을 아울러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감한 제안으로 당시 천문학계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던 화성과 목성 사이 넓은 간격도 설명한다.

 

태양계 행성은 첫번째 행성 수성을 시작으로 서서히 태양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런데 그 거리가 일정한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수성은 태양으로부터 0.4만큼 떨어져있다. 그리고 그 다음 두번째 행성은 0.4+0.3 한 0.7만큼 떨어져있다. 다음 세번째 행성 지구는 0.7+0.3한 1만큼 떨어져있다. 다음 네번째 행성 화성은 1에 0.3을 두번 더한 1.6만큼 떨어져있다.

 

다음 다섯번째 행성은 사실 목성이 아닐지 모른다. 케플러가 어설프게 예측했듯 목성 전에 그때까지 아직 몰랐던 어떤 또다른 행성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 다섯번째 행성은 1.6에 0.3을 네번 더한 2.8의 거리에 있다. 그 다음 여섯번째 행성이 바로 목성이다. 목성은 2.8에 0.3을 여덟번 더한 5.2의 거리에 정말로 있다. 이 계산은 목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목성 다음 토성은 태양에서 목성까지의 거리 5.2에 0.3을 열여섯번 더한 10의 거리에 놓여있다.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계산해나가면 당시 태양계 마지막 행성으로 알려져있었던 토성 다음의 미지의 행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

수성             : 0.4

금성             : 0.4 + 0.3 = 0.7

지구             : 0.7 + 0.3 = 1.0

화성             : 1.0 + 0.3 × 2 = 1.6

미지의 행성 : 1.6 + 0.3 × 2 × 2 = 2.8

목성             : 2.8 + 0.3 × 2 × 2 × 2 = 5.2

토성             : 5.2 + 0.3 × 2 × 2 × 2 × 2 = 10.0

미지의 행성 : 10.0+ 0.3 × 2 × 2 × 2 × 2 × 2 = 19.6

 

티타우스와 보데가 예측한 태양계 행성들의 위치와 실제로 발견된 태양계 천체들의 위치 비교.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세레스와 천왕성까지는 잘 들어맞지만, 이후 해왕성과 명왕성은 잘 맞지 않는다.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Ti-tus-Bode_law-gl.svg
티타우스와 보데가 예측한 태양계 행성들의 위치와 실제로 발견된 태양계 천체들의 위치 비교.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세레스와 천왕성까지는 잘 들어맞지만, 이후 해왕성과 명왕성은 잘 맞지 않는다.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Ti-tus-Bode_law-gl.svg

툭 던진 이론의 반란

물론 아무런 물리적 근거가 없는 정말 말그대로 숫자 놀이였기 때문에 보데의 과감한 예측은 초기에는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아웃오브 안중이었던 숫자 놀이가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하나 둘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토성 넘어 태양계 끄트머리에 숨어있던 또다른 행성이 하나 발견된다. 이렇게 발견된 천왕성이 놓여있던 거리는 대략 19.2 정도였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티티우스와 보데가 만들었던 숫자 놀이로 예측되었던 토성 다음 행성이 놓여있을만한 거리값과 비슷한 수치였다.

 

천왕성의 발견과 함께 수천년간 ‘수금지화목토’ 행성이 6개 뿐이었던 태양계에는 추가로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었고, 앞다투어 또다른 행성을 새로 발견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피아찌 (Giuseppe Piazzi)가 새로운 발견을 한다. 이번 발견은 토성 그리고 천왕성 넘어 더 바깥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쪽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새롭게 천체 하나가 발견되었다. 굉장히 작고 못생긴 바윗돌에 가까웠던 이 자그마한 행성은 ‘세레스(Ceres)’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놀랍게도 세레스는 앞서 티티우스와 보데가 예측했던 2.8의 거리에 놓여있었다.

 

이렇게 되자 그들이 툭 던진듯 했던 요상한 이론이 갑자기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나도 아니고 심지어 두개나 연속해서 어디에서 행성이 발견될지 예측했다. 오히려 과학이라기 보다는 마법에 가까울 정도로 신기한 법칙이었다. 점점 이 이론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갔고, 많은 사람들은 이 자칭 법칙이라고 불리는 숫자 놀이에 근거해서 또 다음 행성이 있을법한 위치를 가늠하고 그 거리 주변에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 헤맸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계속해서 우리 태양계 행성들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 유행했던 행성 사냥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그리고 심지어 복잡한 물리가 필요없는 굉장히 매력적인 가이드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티티우스와 보데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는 새로운 행성이 추가로 발견된다. 이번 행성은 녹록치 않았다. 그들의 예측대로라면 천왕성보다 더 멀리 위치한 해왕성은 38.8 정도 되는 거리에 놓여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왕성이 발견된 거리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30 정도 되는 거리였다. 그래도 봐줄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추가로 발견된 (한때는 행성이었던) 명왕성의 거리가 크게 틀어지면서 티티우스와 보데의 예측은 매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의 예측대로라면 70이 넘는 훨씬 더 먼 거리에 있어야했지만, 명왕성은 그 절반 수준정도로 훨씬 가까운 39 정도 되는 거리에 놓여있었다.

최근 연구에서 진행된 태양계 바깥 외계 행성계에 접목시킨 티티우스 보데의 법칙. / Using the Inclinations of Kepler Systems to Prioritize New Titius-Bode-Based Exoplanet Predictions,T. Bovaird, C. H. Lineweaver and S. K. Jacobsen, 2015
최근 연구에서 진행된 태양계 바깥 외계 행성계에 접목시킨 티티우스 보데의 법칙. / Using the Inclinations of Kepler Systems to Prioritize New Titius-Bode-Based Exoplanet Predictions,T. Bovaird, C. H. Lineweaver and S. K. Jacobsen, 2015


먼지 속에서 다시 끌올된 이야기

사실 이들의 예측의 가장 큰 약점은 ‘물리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중력과 같은 물리적인 자연 법칙을 통해 계산해서 실제로 행성들의 거리가 이런 간단한 수학적 관계식을 따른다는 점을 증명해내야했다. 하지만 이 예측을 제안한 그들 스스로도 물리적 근거는 없었다. 그냥 보이는 우주가 공교롭게도 그렇게 생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 법칙마저도 우리가 알게 되는 태양계의 영역이 더 넓어지면서 점차 뒤틀리게 되었다. 세레스와 천왕성까지는 봐줄만 했지만, 이후 해왕성과 명왕성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매력을 잃어버린 티티우스와 보데의 법칙 아닌 법칙은 역사의 뒤안길로, 중세 천문학의 흑역사로 묻히게 되었다. 천문학계의 재밌는 해프닝 정도로 기억되었다.

 

그렇게 거의 몇백년 동안 그들의 이론은 천문학계에서 단한번도 진지하게 다뤄진적이 없다. 중간 중간 간단한 수학적 관계식이라는 점 때문에 그 관계식을 증명해보이고 싶은 욕구를 건드리기는 하지만, 뚜렷한 답안은 제시된 적이 없다. 오랜 시간동안 책장에 틀어박힌 채 먼지에 뒤덮여 버렸다.

 

그런데 그런 먼지 속 흑역사가 최근 들어 끌올되는 일이 발생했다. 티티우스와 보데가 과감한 예측을 세상에 공개한지 400여년이 지난 후, 먼 후배 천문학자들의 관심은 우리가 살고있는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별 외계를 향했다. 이제 우리 태양이 아닌 다른 별 주변을 도는 외계 행성을 탐사하면서 하나씩 실적을 올려갔다. 우리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먼 우주를 뒤지면서, 자연스럽게 발견된 외계 행성계들의 모양새도 하나 둘 늘어났다.

 

그러던 중 한 호기심 많은 천문학자는 역사 속에 묻혀있던 티티우스와 보데의 숫자 놀이를 떠올렸다. 만약 그들의 예측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의미있는 제안이었다면, 그 법칙이 굳이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만 속박되어있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당시 그들은 태양계 바깥에 또다른 행성계들의 존재 자체도 몰랐지만, 만약 그것이 정말 우주를 아우르는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외계 행성계에 대입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했다. 이 젊은 신세대 천문학자들은 우리 태양계처럼 최소 3개 이상 여러개의 행성이 별 주변을 맴돌고 있는것으로 확인된 외계 행성계들의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 여러 행성들이 각자 자기 중심의 별에서 떨어진 거리들을 정리하고, 그 거리가 어떤 분포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외계 행성계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한 결과 90%가 넘는 외계 행성계들이 티티우스와 보데가 예측했듯이, 어떤 단순한 수학적 관계를 따르고 있었다. 중심 별에서 멀어질 수록 그 별로부터 행성까지 떨어진 거리는 일정한 법칙으로 서서히 증가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티티우스와 보데의 영향력은 태양계를 벗어나 외계의 행성계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천문학자들의 독특한 호기심 때문에 먼지에 묻혀있던 그들의 숫자 놀이가 다시 천문학계로 끌올되었다. 그리고 이 젊은 천문학자들은 마치 17세기의 그들처럼 굉장히 과감한 예측을 시도했다. 티티우스와 보데의 법칙 아닌 법칙을 근거로 행성이 몇개 발견안 된 별 주변에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행성들이 있을 법한 위치를 예측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도 아닌 아주 먼 곳에 떨어진 외계 행성들의 위치를 예측한 셈이다.

 

티티우스와 보데가 뿌듯하게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까. 오래전 주류 학자들에게 무시를 받던 이론이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재평가 받으면서 오히려 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다시 자리잡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런 일들은 과학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말 그대로 티티우스와 보데는 수백년 전 천문학계의 ‘틈새시장’을 제대로 노린 셈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들이 제안했던 말도 안되는 법칙은 단순히 우연에 의한 숫자 놀음이었을까, 아니면 세대를 넘는 뛰어난 통찰이었을까. 언젠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수는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부터 이 우주를 꽤 깊게 이해해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신이 없었을 뿐. 과학은 항상 이런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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