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파르코스의 이상한 시력 테스트
혼돈의 카오스, 동화의 시작

아주 먼 옛날, 매년 겨울이 오면 밤하늘에 7명의 공주님이 살고 있는 반짝이는 성이 나타났어요. 사람들은 그 성에 살고 있는 공주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 했죠. 하지만 누구도 공주님들의 성이 정확히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공주님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준비할 수가 없었어요.

마을에 살고 있는 늙은 노인들이 오래 전에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본 성까지의 거리만 알려져 있었어요. 노인들마다 제각각 나름의 노하우로 거리를 짐작했고 오차가 크기는 했지만, 다들 대충 430광년 떨어져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노인들이알려주는 거리를 기준으로 다른 별들까지의 거리도 비교하면서 밤하늘의 지도를 그리고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젊은 요정이 내려와 공주님들이 살고 있는 성까지의 거리가 사실은 훨씬 더 가까운 390광년이라고 알려주었죠. 히파르코스라는 이름의 이 자신감 넘치는 요정은 자신의 방법이 아주 정확하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어요. 사람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노인들보다, 이 젊은 히파르코스 요정의 말을 믿기로 했죠. 그리고 밤하늘의 지도를 그리는 일을 이 히파르코스 요정에게 맡기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히파르코스 요정은 하늘로 올라가 마을 사람들에게 11만개가 넘는 별까지의 거리를 알려주었어요.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히파르코스가 알려주는 대로 우주의 지도를하나씩 그려갔답니다. 그리고 히파르코스를 닮은 또 다른 요정을 만들어 더 많은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오도록 하늘에 띄워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히파르코스요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였죠. 지금까지 믿었던 히파르코스 요정이 알려준 밤하늘 별들의 거리가 다 거짓말이라는 소문이었어요. 그래서 마을의 시력이 좋은 젊은이들은 힘을 합쳐 땅에서 1년 동안 별들을 바라보면서, 히파르코스 몰래 공주님의 성까지의거리를 아주 정밀하게 확인해봤어요.그런데 놀랍게도, 공주님들이 살고 있는 성까지 거리는 히파르코스 요정이 알려주었던390광년이 아니라, 오래전 마을의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거리, 바로 430광년이었어요. 이미 히파르코스 요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려놓았던 우주의 지도가 한순간에 쓸모가 없어지게 되어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했어요.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1년 동안 태양 주변을 맴도는 지구 위에서 전파 망원경을 통해 플레이아데스까지의 시차를 측정한다. ⓒ. ESA
1년 동안 태양 주변을 맴도는 지구 위에서 전파 망원경을 통해 플레이아데스까지의 시차를 측정한다.
ⓒ. ESA
플레이아데스, 밤하늘을 보는 이들을 위한 시력 테스트

위의 짧은 자작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의 성은 바로 겨울철 밤하늘 황소자리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산개성단 플레이아데스다. 이 산개 성단은 맨눈으로 봐도 확연하게 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땅에서 올려다보면 대략 7개 정도의별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 성단에는 일곱 명의 공주님, 칠공주라고 부르며 관련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수 천 년 전 고대 서양에서는 군인을모집할 때, 플레이아데스를 보게 하면서 별이 몇 개까지 분해되어 보이는지를 가지고 시력 검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플레이아데스성단은 실제로는 7개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푸른 아기별들이 모여 있는 산개 성단이다. 비교적 다른 천체들에 비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 덕분에 플레이아데스는 지금까지도 다른 더 먼 성단을 관측하기 위해 기준을 잡고, 망원경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용도로 많이 이용되는 천체다. 수 천 년 전 군인들의 맨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러 거대 망원경들까지, 이 일곱 명의 공주 성단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력을 테스트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천문학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 까다로운 문제다. 우리가밤하늘에서 보는 모든 별빛은 실제 밝기가 아니다. 더 멀리 있는 별일수록 실제 보다 더어둡게 보이게 되므로, 실제 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별까지의 거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천체까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오차는 커지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놓인 천체들까지 거리를 추정해서 그 천체와 상대적인 거리를 비교해가며, 조금씩 우주의 지도를 넓혀가는 방법을 사용하고는 한다.

플레이아데스까지 거리는 약 400광년 정도로 엄청 먼 다른 천체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가까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우주 지도를 그리기 위한 축척을 잡는데 잘 활용된다. 또이 성단에 살고 있는 어린 별들의 밝기와 특성을 통해 별의 내부, 물리 화학적 특성들을연구해왔기 때문에, 현대 천문학에서 플레이아데스는 다른 모든 별들의 기준 모델로써,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상과 우주, 두 곳에서 날아온 어긋난 대답

지상 망원경들을 이용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놓인 성단까지의 거리를 유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단 안에서 돌아다니는 별들의 운동이나, 별들의 밝기 분포 등 다른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잴 수 있지만, 그리 정확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오차가 크다.

대신 플레이아데스처럼 어느 정도 해볼 만한 가까운 거리에 놓인 별들까지 거리를 아주정확하게 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1년을 주기로 태양 주변을 맴도는 지구의 운동, 공전 자체를 이용하는 ‘연주 시차 (Parallax)’ 방법이다.

달리는 차를 타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차도 바로 옆에 있는 가로수들은 쌩쌩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멀리 배경에 있는 산이나 마을은 상대적으로 시야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1년을 주기로 움직이는 지구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별들은 조금씩 하늘에서 위치가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먼 별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가 1년간 움직이는 동안 지구의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들의 상대적인 움직임의 차이를 이용하면 꽤 정확하게 그 거리를 잴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구의 하늘에서는 이 좋은 방법을 써도 큰 한계가 하나 있다. 바로 지구의 대기, 윤동주의 시구처럼 바람에 스치우는 별빛은 1년간 순전히 지구의 시야가 변하면서 움직인 별들의 위치 변화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Hipparchos)라는 우주 망원경, 요정을 만들어서 지구 대기 바깥 우주에 띄워 올렸다.히파르코스가 새롭게 잰 플레이아데스까지의 거리는 390광년. 그동안 이전에 알고 있던값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순진한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가 알려주는 값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이후 히파르코스는 이 연주 시차라는 꽤 간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금껏 11만개가 넘는 별들의 거리를아주 적은 오차로 측정해주었고, 지금껏 천문학자들은 그 값을 기준으로 우주의 지도를 그리고, 별들의 특징을 공부했다.

히파르코스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의 많은 별들까지 거리를 잴 수 있었고, 최근2013년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이 대를 잇는 두 번째 우주 망원경 가이아 (Gaia)를 발사해, 그 다음 바통을 이어받도록 했다. 히파르코스와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로 작동하지만 조금 더 정밀한 오차로 거리를 더 정확하게 알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이 지상에 있는 거대한 전파망원경들을 이용해 히파르코스만큼민감한 정밀도를 가지고 다시 플레이아데스성단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지구에 있는 온갖 전파 안테나들이 힘을 합쳐 거리를 쟀기 때문에, 그 값은 꽤 믿을만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지상의 전파 망원경으로 연주 시차 방법을 이용해 확인한 플레이아데스성단까지의 거리는 히파르코스 전에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한443광년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요정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마을의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확인해보니, 마을의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수치가 맞았던 것이다.

지금껏 히파르코스가 알려준 11만개가 넘는 별들까지의 거리는 수십 수백편의 논문에인용되며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특징을 연구하는데 바탕이 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히파르코스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두 번째 최신 우주 망원경까지 띄워 올려 더 넓은영역까지의 지도를 그려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만약 정말로 히파르코스가 알려준 값에 문제가 있다면, 히파르코스 요정이 사실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측정한 플레아데스까지의 거리. 히파르코스가 측정한 유독 짧은 거리가 눈에 띈다. ⓒ. Science
각기 다른 방법으로 측정한 플레아데스까지의 거리. 히파르코스가 측정한 유독 짧은 거리가 눈에 띈다.
ⓒ. Science
아 망했어요―

히파르코스의 뺑끼에 뒤통수가 얼얼해진 천문학자들. 더 큰 문제는 왜 히파르코스가 플레이아데스까지의 거리를 잘못 측정했는지 정확한 문제의 원인을 아직 밝히지 못했다는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히파르코스 우주 망원경의 뺑끼. 정말 더 안타까운 것은 기껏히파르코스를 닮은 두 번째 우주 망원경을 띄워 놓은 이후에 그 문제가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이 요정들이 착각한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히파르코스 그리고 가이아가 알려줄 별들의 지도를 조금씩 수정해 실제에 가깝게 보정 작업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다시 추가 관측을 통해 마을의 노인들과 하늘의 요정들 중 누가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확인해볼 계획이다.

대체 플레이아데스 공주님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의 성에 앉아 혼란에 빠진 지구의 천문학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공주님들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글 지웅배 (galaxyz@galaxy.yonsei.ac.kr)


 

참고 자료

<A VLBI resolution of the Pleiades distance controversy>,

Carl Melis, Mark J. Reid, Amy J. Mioduszewski, John R. Stauffer, Geoffrey C. Bower, Scienc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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