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 시작, 즉 빅뱅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면서 마무리되었고, 빅뱅 이론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주론은 이제 완전히 완성된 과학 분야인 걸까? 우주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전부 실업자가 되었을까? 아니다. 지난 20~30년간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사실들은 기존에 알려졌던 천문학, 더 나아가 물리학의 이론들을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중 가장 거대한 주제인, 우주의 가속 팽창에 대해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의 가장 기발한 실수
: 알베르트 아인슈 타인은 우주 상수의 도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Biggest Blunder)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는 가장 기발한 실수(Brightest Blunder)라고 재평가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했을 때, 그는 서로를 밀어내려는 에너지가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어도 물리 법칙은 여전히 성립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에너지를 우주 상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주 상수는 존재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으며, 그 값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험으로 측정할 수 없었기에,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를 빼고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2년 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최초로 우주 자체의 방정식을 발표하며 우주 상수를 다시 도입한다. 만약 모든 물질이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기만 한다면, 은하도 별도 모두 하나로 단단히 뭉쳐버릴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가 이런 일을 막고 우주를 그 상태 그대로, 즉 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빌렘 드 지터는 우주 상수가 우주를 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빠르게 커지게 하고, 결국은 우주를 완전히 찢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22년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산더 프리드먼은 아인슈타인의 우주가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더는 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매우 불안정함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정적인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은 깨졌다. 한발 더 나아가,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부이자 과학자 조르주 르메르트는 1927년에 허블 상수를 비롯한 우주의 팽창 이론을 수학적으로 제시 했다. 이런 이론적인 논의들은, 1929년에 에드윈 허블이 우주의 팽창을 발견하며 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이렇게 아인슈타인의 정적 우주 모형은 사라지게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를 자신의 “가장 큰 실수”라 지칭하며 폐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주의 팽창이 말하는 것은 정적인 우주가 틀렸다는 것뿐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우주 상수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다. 우주 상수 역시 처음부터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허용된 만큼,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온전히 우주를 바라본 관측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 이론과 기술이 발전해서 더 멀리 더 자세히 보게 되면, 그전까지는 몰랐던 숨은 그림들이 드러나며 관측 사실도 바뀌게 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얼마 전 “안녕 헤이즐”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제목은 “The Faults in our Stars”이다. 어떤 별들은 과학자들의 잘못을 꼬집어주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망원경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멀리 있는 은하까지 볼 수 있겠지만, 정말 먼 은하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도 희미한 구름 조각으로 보이기 때문에 좋은 장비가 있다고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는 않다. 때때로 일어나는 초신성들만이 정말 멀리 있는 은하들의 특징들을 알아낼 수 있게 도와준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려면 더 큰 소리를 질러야 하듯, 멀리 떨어진 별에서 오는 빛일수록 더욱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멀리 있는 별을 관측하려면 그 별에서 그 만큼 밝은 빛이 나와야 한다. 거꾸로 원래 밝기를 아는 별을 관측하면 그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모든 별 가운데에서도 폭발하는 초신성만큼 밝은 별은 드물다. 갑자기 밝아진 초신성 하나가 내는 빛은 은하전체가 내는 빛과 맞먹을 정도다. 초신성들의 밝기는 보통 제멋대로지만, la형 초신성1) 이라 불리는 특이한 초신성은 가장 밝을 때의 밝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2) 매우 밝아 멀리서도 볼 수 있고 그로부터 거리도 알 수 있는 초신성 덕에, 천문학자들은 우주 반대편에 있는 은하들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팔로마 산 천문대와 같이 전 우주를 관측하며 새로 초신성이 생겨나는지를 계속 감시하는 연구소도 있다.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초신성이 정확히 얼마나 밝은지를 알게 되었고, 전 우주의 초신성을 감시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졌다. 이를 이용해 어떤 천문학자들은 옛날의 우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아내려 했다. 우리가 생각한 우주의 역사가 정말로 맞는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생겨날지가 궁금했기에. 그러나 그 이야기가 아직도 정리되지 못하는 난장판을 만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충격과 공포
:미국은 21세기를 전후로 “Shock and Awe”라는 전쟁 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빠르게 적군의 심장부를 파괴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과학자들에게 단 하나의 발견, 그리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혼란도 그렇지 않을까.
1998년에 미국의 아담 리스와 호주의 브라이언 슈미트가 이끄는 연구팀은, 10억 광년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먼 옛날의 Ia형 초신성을 들여다보고는 아주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다음 해인 1999년에 미국의 천문학자인 사울 펄무터를 비롯한 초신성 우주론 연구단에서도 비슷한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서로 다른 두 연구팀에서 내놓은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 우주가 커지는 속도가 과거보다 더 빨라졌다는 것, 즉 우리 우주는 가속 팽창한다는 것이다. 중력으로 서로 끌어당기기만 한다면, 우주의 팽창 속도는 감속해야지 가속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우주에는 서로를 밀어내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한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폐기했던 우주 상수처럼. 이렇게 우주 상수는 다시 한 번 우주론에 등장한다.
이 발견은 그야말로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저명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1998년 12월 호의 표지를 이 발견으로 장식하며 “올해 가장 획기적인 발견” 이라 대서특필했다. 이후 몇 년간 이 관측 결과는 혹독한 검증을 거쳐, 채 10년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의 과학 교과서들도 모조리 수정되었다.3) 그 이전까지는 빅 크런치가 일어날지도 모른단 책이 많았지만, 요즘 출간되는 어떠한 교양서적에서도 이런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발견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어, 명실상부 20세기 마지막을 장식한 위대한 발견으로 기록된다.
우표수집가들의 발란
: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포드는 말했다. 물리학을 제외한 모든 과학은 우표 수집이라고. 그러나 그런 우표 수집을 바탕으로 과학은 발전한다.
1934년에 르메트르는 우주 상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진공 에너지가 그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양자역학을 연구한 많은 물리학자 역시 비슷한 주장을 계속 해왔고,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우주 상수의 정체가 양자 진공의 진공 에너지4) 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 추측이 과연 맞을까?
물리학자들은 수십 년간 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만물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당연히, 이런 이론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중에는 우주의 가속 팽창도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물리학은 가속 팽창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 양자전기역학, 양자 색 역학, 표준 모형, 초대칭성이나 양자 중력 이론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오늘날 야심 찬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만물의 이론을 만들었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이론 중 어떤 것도 우주 상수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최신 관측 결과들에 따르면, 우리 우주의 물질-에너지5) 전체의 73%는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주 상수이지만, 만물의 이론을 표방하는 물리학 이론 중 어떤 이론도 우주 상수를 설명할 수 없다. 일부 이론들은 우주 상수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다. 다른 이론들은 우주 상수와 비슷한 에너지가 존재할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토대로 계산한 우주 상수는 아득히 커야 해서, 우리가 실제 관측하는 우주 상수를 설명할 수 없다.6) 우리가 우주 상수를 직접 실험실에서 검출한 적도 없고 이론적으로 설명할 방법도 없어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우주 상수를 암흑 에너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선 현대 물리학이 상당히 많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
: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이다. 과학의 새 이론이 서기 위해선 먼저 과거의 이론이 무너져야 하지 않을까.
천문학의 본질은 관측이다. 무언가 철학적인 사유도 아니고, 수학적인 배경도 아닌, 정직한 관측. 하늘에서 내리는 빛. 어떻게 보면 천문학은 이론물리학과 같은 학문에 비하자면 훨씬 덜 고상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천문학이 이바지한 바를 생각해보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뉴트리노 진동 등, 천문학적 발견들은 기존 물리 이론들을 무너뜨리거나 새로운 물리 개념과 이론을 만들도록 압력을 넣는다.
천문학이어야만 가능한 일도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불완전한 과학 이론인데, 더는 상대성 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특이점’이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7) 그런 일반 상대성 이론의 근간이 되는 뉴턴의 중력 이론은, 태양계 밖의 규모에서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만약 태양계보다 더 큰 규모에서 뉴턴의 중력 이론이 틀리다고 밝혀진다면? 일반 상대성 이론이 불완전한 이유가 뉴턴의 중력 이론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물리학을 밑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천문학(Astronomy)의 새로운 발견은 물리학자들의 재앙(Disaster)8)이 될 수 있다. 천문학의 새로운 발견들이 어떤 파란을 몰고 오고 사실이라 믿었던 것들을 무너뜨리며 얼마나 많은 학자를 밤잠 설치게 할까, 이런 걸 지켜보는 것 역시 천문학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1) Type Ia, I는 숫자이므로 “one-a”형이라고 읽는다. 절대로 “이야”나 “아이에이”형, 혹은 “LA”형이 아니다.
2) 이는 다른 초신성들과 발생하는 원인이 달라서 그렇다. 다른 초신성들이 죽어가는 별에서 생기지만, Ia형 초신성은 백색 왜성에 쌓인 물질들이 일으키는 폭발이다.
3) 가령, 본 기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교과서에선 가속 팽창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선 거의 모든 지구과학 교과서의 필수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있었다.
4) 아무 에너지도 없는 것 같은 진공의 “바닥” 상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 특정한 양자물리 현상이 일어나면 이런 에너지가 실제로 드러나게 된다.
5) 상대성 이론에서 에너지는 물질과 동등하다.
6) 1 뒤에 0이 100개보다도 더 많이 붙을 정도로 큰 숫자만큼.
7) 잘 알려진 특이점 중에는 블랙홀이 있다. 우리는 블랙홀의 아주 근방인 사건의 지평선 안쪽까지도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예측할 수 있지만, 정작 제일 가운데의 특이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 상대론에 위배된다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의 중심부에 있는 특이점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8) 어 단어 Disaster의 어원은 그리스어인데, Dis(안 좋은)와 Aster(별)의 합성어로, 별의 위치가 좋지 않아 재앙이 일어난다는, 다분히 점성술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여기의 Aster에서 천문학(Astronomy)이라는 단어도 파생되었다.
[참고문헌]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11 – Advanced Information”. Nobelprize.org. Nobel Media AB 2014. Web. 12 Sep 2014.
A. Einstein, 1916, Die Grundlage der allgemeinen Relativittstheorie, Annalen der Physik, 354, 769-822 (English-translated version from A. J. Kox, M. J. Klein, & R. Schulmann, 1997, 《The Collected Papers of Albert Einstein》, Vol.6, The Foundation of 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A. Friedmann, 1922, ber die Krmmung des Raumes, Zeitschrift fr Physik, 10, 377-386 (English-translated version from G. F. R. Ellis & H. van Elst, 1999, General Relativity and Gravitation, Vol. 31, No. 12, On the Curvature of Space’)
A. G. Riess et al., 1998, Observational evidence from supernovae for an accelerating universe and a cosmological constant, The Astronomical Journal, 116, 1009-1038
S. Perlmutter et al., 1999, Measurements of Ω and Λ from 42 High-Redshift Supernovae, The Astrophysical Journal, 517, 565-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