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라디오

회사원 김전파씨는 아침 7시를 알리는 휴대폰 알림을 듣고 잠에서 깼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출근길에 올랐다. 얼마 전에 산 네비게이션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 중 가장 덜 막히는 길을 안내해 줘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었다. 회사에 도착한 그는 직장 상사의 눈을 피해 평소 좋아하던 영국 축구팀의 축구 경기를  DMB로 몰래 시청했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는 취침 시간에 맞춰 흘러나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휴대폰의 정확한 알람, 전세계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위성 방송과 DMB, 네비게이션의 GPS와 FM 라디오까지 위에서 언급한 김전파씨의 하루에는 전파가 빠질 수 없다. 우리는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전파의 바다 속에 살고 있다.

한때 집집마다 유행처럼 설치하던 위성 방송의 안테나, 이 접시들은 방송 신호를 중계해주는 방송통신위성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 일종의 작은 전파망원경인 셈이다. 전파는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우주의 기원과 비밀을 밝혀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오고 있다. 전파는 통신위성이나 방송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영화 'Contact'
영화 ‘Contact’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별들의 노랫소리

라디오 주파수를 아무 방송도 잡히지 않는 빈 채널로 맞추고 안테나를 하늘을 향해 뻗어보자. 비록 아름다운 음악이나 재미있는 사연은 들리지 않으나’무의미한 잡음’ 속에서 별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인공의 전파를 만들어 통신에 이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주는 별들끼리 주고받는 자연의 전파 신호로 가득차 있었다. 표면 온도가 수 만도나 되는 뜨거운 별들은 물론이고 초대형 블랙홀도, 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차가운 가스 덩어리도 전파를 내보낸다. 우리 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전파 메아리도 빈 우주 공간을 아직까지 더돌고 있다. 전파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시광선과 달리 구름과 같은 장애물을 쉽게 통과하는 성질이 있기 떄문이다. 별들은 가스와 먼지 덩어리의 한가운데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시광선으로는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전파를 이용하면 X-ray로 우리 몸속을 꿰뚫어보듯 갓 태어난 별들의 모습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별 뿐만 아니라 우리 은하의 중심에선 어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우리 은하가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밝히는데에도 전파가 중요한 역활을 한다.

태양도 예외 없이 전파를 내뿌는데, 간혹 태양 활동이 활발할 때면 전파를 너무 강하게 내보내 인공위성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전잦품에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심각한 피해가 우려될 떄는 태양 연구기관에서 ‘태양 주의보’를 내려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전파통신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인간의 통신기기를 지켜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파천문학인 셈이다.

https://www.eso.org
https://www.eso.org
별빛을 담는 거대한 접시

전파는 태생적으로 구름이나 장애물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은 전파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면 보석 같은 별빛 보다는 뿌옇고 흐릿한 별 덩어리를 보게 된다. 때문에 전파망원경은 선명하게 우주를 관측하기 위해 가시광선을 관측하는 망원경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 비율이 대략 10만 배 정도나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학 망원경인 보현사 천문대의 1.8m 망원경만큼 선명하게 전파를 관측하려면 지름이 180km나 되는 거대한 접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망원경을 우리나라에 두세대만 설치했다간 우리는 평생 햇빛을 못 보고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꾀를 내야만 했다.

같은 노래를 틀어놓은 두 스피커 사이를 움직이다 보면 소리가 두배로 크게 들리는 지점과 후러씬 작게 들리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파동이 서로 섞이기 떄문인데, 이러한 파동의 성질을 간섭이라고 한다. 전파도 파동의 일종이기 때문에 간섭이 일어난다. 지름180km짜리 거대한 접시를 만들지 않아도 작은 전파망원경을 180km 떨어진 곳에 각각 설치해 동시에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 180km짜리 망원경처럼 선명하게 관측 할 수 있다. 간섭을 이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에 설치되는 대형 전파망원경들은 대부분 작은 전파망원경 여러대가 띄엄띄엄 있는 방식으로 설치되어 ‘전파망원경’이 아닌 ‘전파망원경 그룹’으로 운영된다.

영화에서도 출연하며 유명세를 탄 미국의 VLA(Very Large Array)는 이름 그대로 ‘아주 큰 전파망원경 그룹’이다. 25m 크기의 전파망원경 27대로 한 대상을 동치에 관측해 최대 36km 크기의 전파망원경의 역량을 수행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전파망원경이 66개나 설치되고 있다.

http://images.nrao.edu/681
http://images.nrao.edu/681

우리나라도 ‘천문강국’답게 KVN(Korean VLBI Network, 한국우주전파관측망)이라고 하는 전파망원경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KVN은 각각 서울과 울산, 제주도에 설치한 21m 크기의 작은 망원경 세대로 지름 500km 크기의 전파망원경과 동일한 해상도로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전파망원경인 셈이다. 흐린 날이 많고 도시 불빛을 피할 곳이 없는 우리나라는 가시광선을 이용한 천문학 연구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 작은 망원경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KVN의 건설 이후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전파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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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의지의 천문학자들, 지구에서 아무리 큰 전파관측망을 구축한다해도 지구의 지름인 1200km보다 크게 만들지 모한다는 한계를 깨닫고는 아예 우주공간에 전파망원경을 띄워서 수십, 수백만km 크기의 전파관측망을 만들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점점 더 거대해지는 전파망원경과 함께 인류의 지식도 우주의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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