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의 움직임은 마치 오페라의 발레단처럼 질서정연했다.
맨 처음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차례였다. 그들이 가로등을 켜고 잠을 자러 가면, 중국과 시베리아의 사람들이 발레 무대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지면, 러시아와 인도 가로등지기들 차례,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와 유럽, 또 그 다음에는 남아메리카의 가로등지기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무대에 나타나는 순서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
그의 작은 별에서라면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러 놓기만 하면
언제든 보고 싶을 때 석양을 볼 수 있다.
‘어떤 날은 해가 지는 것을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가만히 우주에 누워 천천히 자전하는 지구를 내려다보자. 요즘 시대에는 우리 대신 대기권 밖에서 365일 지구를 내려다보는 인공위성들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구는 역시 푸르고, 푸른 바다 위에는 하얀 구름이 휘몰아치고, 황토빛 육지가 섬처럼 떠 있다. 또 지구에서 본 달이 그렇듯 태양빛이 닿지 않는 지표의 일부는 배경의 먼 우주와 함께 검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속세(?)에서 멀어진 우주에 떠 있는 입장에서 서술하자니 거창하게 ‘태양빛이 닿지 않아’ 검게 보인다고 표현했지만 지구인 관점에서 이 어둠을 표현하면, 밤이다.
#1 Chasing Horizon
이제부터는 표면 위에 나타난 빛과 어둠의 경계에 집중해보자. (‘빛과 어둠의 경계’라니 참으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표현이다.) 마치 통돼지 바비큐를 불 위에서 돌려가며 익히는 것처럼 태양빛은 서서히 자전하는 지구의 표면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차례로 비춘다. 각 나라의 ‘가로등지기’들이 가로등을 켜기 시작하는 어둠의 경계 또한 뉴질랜드에서 시베리아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순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밀려가며 밤의 시작을 알린다.
만일 이 경계를 따라 어둠이 밀려오는 속도로 서쪽을 향해 달려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해질 무렵의 시간에 머무를 수 있다. 다만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말로는 낙타를 바늘구멍에 통과시키는 것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우리의 행성 지구는 어린왕자의 행성 B612와 달리 너무 커서, 의자를 들고 몇 발자국 뒤로 걸어가는 속도로는 도저히 지는 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적도 지역을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 속도는 약 1670km/h에 달하기 때문에 일반 여객기의 비행속도 800km/h로 지구의 자전을 따라잡는 것은 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 황당해 보이는 태양과의 경주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2014년 2월 시계 브랜드 C사에서는 ‘Chasing Horizon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기획하였고, 전직 조종사 Jonathan Nicol과 사진작가 Simon Roberts는 장장 8시간에 거쳐 석양을 쫒았다. 그들은 어떻게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에 인용되어 주목 받은 Dylan Thomas의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 여행을 가능하게 할 가장 단순한 방법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주아주 빠른 제트기를 타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당신이 직접 지구의 자전이 느린 곳을 찾아 가면 된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모든 곳에서 일정하지 않다니? 뭔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든 곳에서 일정한 것은 지구 자전의 ‘각속도’이다.
친구와 손을 잡고 나란히 커브 길을 걸어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커브의 안쪽에 있는 사람이 한 걸음 걸을 때 바깥쪽 사람은 두 세 걸음을 걸어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로, 지구의 자전축에서 멀리 떨어진 적도의 지표면보다는 고위도 지역이 자전 속도가 느리다. 즉 우리는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만만한 상대와 경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위도 70도 이상의 지역에서는 지구가 동지를 지나는 12월 이후로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고 그 상태로 3월이 되면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에 대해 23.5도 기울어져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이유로 겨울이 다가오면 아예 해가 뜨지 않기도 한다. 석양이 보고 싶은데 해가 지지 않는다니! 해 지는 풍경을 좋아하는 어린왕자가 들으면 참 슬퍼할 일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피하려면 이 비행은 2월이 적당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실제적인 비행 항로 결정부터 차가운 공기에 엔진이 얼어버린다든지 중간에 잠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야 한다든지 하는 몇 가지 사소한 (아니, 아주 크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필자는 천문학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였으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에 하나 독자들 중 이 무모한 도전에 동참할 모험가가 있다면, 그런 것들은 반드시 해당 분야의 전문가 및 탐험가 분들과 상담하시길 바란다. 한 가지 다행인건 날씨가 흐려서 석양을 못 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구름 위의 하늘은 항상 맑음이다!
#2 Chasing Eclipse
다시 앞서 지구를 내려다보던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보자. 등 뒤로 느껴지는 따듯한 햇볕을 쬐며 나른해하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한가 싶어 돌아보니 우리의 하나뿐인 위성 달이 햇빛을 떡하니 가리고 있다. 이 때 나의 발밑에는 동그랗고 검은 달 그림자가 지표면 위를 스쳐지나간다. ‘일식’이다. 이번엔 달의 그림자를 쫒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경우에는 앞선 Chasing Horizon의 경우와 달리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그림자를 따라가기 위해 우리가 부릴 수 있는 꼼수는 없다.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림자 속에 머무는 동안 개기일식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풍경을 쫒아 최대한 달리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일식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때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는 비행경로에 따라, 또 그날의 지구-달-태양 위치, 궤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마치 장거리 커플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연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플랫폼을 떠나는 기차를 따라 달리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결국엔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일식!?)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힘껏 달려가는 모습이 눈물겹다.
석양이 매일 저녁 (백야나 흑야가 일어나는 곳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반해 일식,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난 개기일식은 그 주기가 길고, 한 번 일어난다고 해도 관측되는 지역이 매우 제한적이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나 영하 50도의 극지방 어딘가처럼 영 이상한 데로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내 머리위로 달 그림자가 지나가길 바란다면 평생 기다려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에 하나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고 해도 하필 그날 구름이 잔뜩 껴버리면 끝이다. 필자는 2012년 금환 일식을 보기위해 일본까지 갔는데 화산이 폭발하는 바람에 화산재만 잔뜩 맞고 돌아왔다. 그러니 정말로 일식이 보고 싶다면 하늘을 날아 직접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좋은 소식은 이 비행은 일식 시즌마다 많은 항공사를 통해 여행 상품화되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혹시나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니 살짝 이야기 하자면, 가장 좋은 창가 좌석에 앉기 위해 우리 돈 약 850만 원을 내고 비행에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덕질도 돈이 있어야 한다더니 이정도의 우주덕후가 되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할 것 같다.

매일 밤 찾아오는 깜깜한 어둠이 무서워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해를 집어삼킨 일식이 다시 해를 토해내길 엎드려 기도하던 인간이 이제는 그들과 경쟁하기에 이르렀다. 너무나 광대해서 가늠조차 되지 않던 우주가 조금씩 우리가 체감 할 수 있는 스케일로 들어오는 것이다. 21세기 과학의 발전은 그동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영역은 지구를 벗어나 넓어지고, 그 크기에 맞춰 탐험가(또는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무모한 도전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