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 : 그 스케일의 끝은 어디까지?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바로 창문으로 바깥이 보인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일 때면, ‘누군가는 이런 날씨에 놀러나갈 텐데 난 지금 여기서 일이나 하고 있네…’하는 생각이 든다. 우울해져서 스마트폰을 보니 ‘방금 전’ 인스타그램에 친구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찍은 셀카를 올렸다. 아니, 왜 나만 지금 사무실인 거지?

우리의 하루는 늘 바쁘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다르게 돌아간다. 내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과제를 하고 있을 바로 그때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쇼핑을 하고,1) 심지어 태어나고 죽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은 모두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각자의 삶’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뿐 아니라 온 우주에서, 아니 우주 그 너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면? ‘다중우주’는 바로 이러한 생각을 설명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리 천문학이라고 해도, 스케일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당장 옆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는데 또 다른 우주라니, 꽤나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중우주론은 과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등 여러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이론이며, 그 동안 기존의 이론들로는 극복하기 힘들었던 개념─시간여행과 같은─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게끔 할 수 있다. 그래도 다중우주론 자체는 복잡한 물리학 이론들이 많이 얽혀 있는 상당히 어려운 이론이기에, 본 글에서는 간단한 개념들만을 다뤄 보도록 하자.

다중우주의 모습(상상도). 각각의 우주는 ‘버블’과 같은 구조로 존재하며, 각기 다른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http://listverse.com/
다중우주의 모습(상상도). 각각의 우주는 ‘버블’과 같은 구조로 존재하며, 각기 다른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http://listverse.com/

다중우주(Multiverse)란 다수의(Multi) 우주(universe)라는 뜻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 외에 각각의 안에서 서로 다른 사건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또 다른 우주들을 말한다. 간단히, 우리의 우주가 동그란 구 안에 있다고 가정하고 이런 구들이 여러 개 모여 있는 주머니2)를 생각해 보자. 이 구들은 모두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지만, 각각의 세계는 ‘서로를 모른 채’ 돌아간다. 좀 더 간단히 생각하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하는 것처럼 여러 우주에서 동시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다중우주의 기본적인 개념은 딱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또 다른 우주들”

영화 ‘맨 인 블랙’의 마지막 장면. 우리의 우주가 외계인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구들 중 하나에 불과한 모습이다. ⓒ. 영화 맨인블랙
영화 ‘맨 인 블랙’의 마지막 장면. 우리의 우주가 외계인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구들 중 하나에 불과한 모습이다.
ⓒ. 영화 맨인블랙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중우주론을 이용하면 시간여행에 대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일반적인 시간여행의 개념에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변화시키면 결국 미래에 영향을 미쳐 다시 처음에 출발했던 현재로 되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다중우주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과거의 변화가 있어도 이에 영향을 받은 우주와 관계없는 우주가 또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개념을 이용하면, 그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타임머신 같은 기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서 이 다중우주의 개념을 사용하여 시간여행과 현재의 미세한 변화에 따른 미래의 변화 등을 다루어 왔다. 영화 ‘소스 코드’(2011)에서 주인공은 8분 동안의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또 다른 영화 ‘데자뷰’(2006)에서도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다. 이 두 영화 모두,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사건을 변화시켜도 그 주인공이 출발했던 ‘현재’에는 영향 없이 필요한 부분만 변경된다는 가정 하에 내용이 전개된다. 또한 영화 ‘미스터 노바디’(2009)의 주인공은 어릴 적 선택에 따라 9개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 9개의 삶은 각각 다르게, 그러나 동시에 진행된다. 이처럼 다중우주는 그 특유의 비현실성 때문에 영화의 소재로 많이 쓰였다.

다중우주의 개념을 다룬 영화들. 주로 과거의 변화에 따른 미래가 받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 http://movie.naver.com
다중우주의 개념을 다룬 영화들. 주로 과거의 변화에 따른 미래가 받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 http://movie.naver.com

사실 다중우주론은 완벽하게 입증된 이론은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 즉 입증을 하고 싶어도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과 비슷한 맥락의 특성을 가진 분야가 이 다중우주론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바로 ‘암흑에너지’다.

암흑에너지의 개념은 이제 비교적 친숙하다.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는 우주배경복사 측정을 통해 우주의 73%~75%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4) 바로 이 암흑에너지의 구체적인 값을 도출하기 위해, 다중우주의 개념이 사용된다.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우리 우주가 유일한 우주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중우주의 개념을 설명한다. ⓒ. NGC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우리 우주가 유일한 우주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중우주의 개념을 설명한다.
ⓒ. NGC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2012년 5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된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방송에서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어떤 호텔에 투숙해 10,000,001호실을 배정받은 상황을 예로 들었다. 1,000만 1호실이라니,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의 9와 3/4승강장처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만약 이 호텔이 10^18 5) 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라면? 10,000,001호실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린 교수는 이 호텔의 객실처럼 우리 우주도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이고 그 우주마다 각각 포함하는 암흑에너지의 양이 다르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암흑에너지의 다양한 추정치들이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 객실’들은 각기 가진 암흑 에너지양에 따라 오므라들 수도, 너무 빨리 팽창할 수도 있어6)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적지만, 어쨌든 다중우주론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암흑에너지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우주로 뻗어나간 인간의 시야는 태양계로, 외계 행성으로, 은하로 점점 더 넓어져 이제는 우리 우주를 넘어 또 다른 우주에까지 그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물론 그 ‘또 다른 우주’의 관측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논란이 많았던 빅뱅 우주론이 결국 정상 상태 우주론을 제치고 오늘날의 표준 우주론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다중우주론도 언젠가는 정설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오늘도 반짝이고 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우리가 모르는 무수한 우주가 각각의 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다중우주가 사실로 입증되면, 우리가 우주를 보는 시선도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깨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변화하든 우리는 우주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이 늘 던져왔던 천문학의 원초적 질문인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도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장예슬 (astrojang00@gmail.com)


1) 프랑스 브랜드 록X땅의 간판 문구 중 하나는 ‘1초에 한 개씩 팔리는 핸드크림’이다. 이는 누군가 혼자서 1초에 하나씩 핸드크림을 구매하고 있다는 게 아닌, 전 세계에서 동시에 많이 팔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2) 영화 ‘맨 인 블랙’의 마지막 장면은 화면의 관점이 무한히 커져 결국 우리의 우주가 동그란 구 안에 존재하는 모습이다. 외계인들은 그런 구가 여러 개 들어있는 주머니에서 구를 하나씩 꺼내어 공놀이를 한다.
3) 물리학자들은 만약 우주가 여러 개 존재한다면 각각의 우주가 부딪히면서 우주 배경 복사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측정을 시도했으나, 첫 연구는 실패로 끝났다.
4) 암흑에너지의 이론적 예상 값과 천문학자들의 실제 측정치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5) 1,000,000,000,000,000,000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다. 그 규모가 상상이 되는가?
6) 우주의 종말에 관한 여러 가설들 중 빅 립(Big rip: 우주가 팽창하여 결국 모든 물질들이 찢어져 버린다는 가설), 빅 크런치(Big Crunch: 우주가 한 점으로 함몰되어 쪼그라든다는 가설)와 연관이 있다.


참고 자료.

네이버캐스트 ‘브라이언 그린의 다중우주’
‘태초 그 이전’ , 마틴 리즈, 2003
https://ko.wikipedia.org/    ‘다중우주’
네이버캐스트 ‘다중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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