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우리 이전의 세대부터 고민한 것들이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어떤 곳일까?

낮과 밤은 왜 생기는 걸까?

밤하늘의 별들은 왜 낮이 되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 고민의 결과는 지금, 천문학과 과학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지금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불과 약 500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에게는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것은 지구 주변을 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우주관은 왜,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갈릴레오 갈릴레이 ⓒ. http://20minuta.hr/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는 금성의 위상과, 목성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목성의 4대 위성을 발견해 지동설을 뒷받침해 주었다. ⓒ. http://20minuta.hr/
Paradigm

우주관의 변화를 알아보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규정하는 하나의 테두리(frame)으로서의 인식 체계라 할 수 있다.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새뮤얼 쿤은 과학의 연구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 하에 이루어지며, 패러다임은 과학 연구에의 모범 사례와 올바른 길을 제시해준다고 정의했다.

쿤에 따르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순간에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있다가 타이어가 펑크난다고 해서 우리는 자동차를 버리고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는다. 패러다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패러다임은 쉬이 바뀌지 않으며, 사람들은 문제점이 발견될 때마다 조금씩 새롭게 수정을 거듭하여 과학을 패러다임에 맞추어 연구했다는 것이다. 설령 과학적 반증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 과학적 반증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은 언제, 왜 바뀌는 것일까?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 혁명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정의했다. 과학적 지식이 차근차근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버리고 새 차를 사는 것처럼 한번에, 급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우주관의 변화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 평평한 땅은 고정되어 있고, 그 위로 천구가 돌고 있다. ⓒ. www.themarysue.com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 평평한 땅은 고정되어 있고, 그 위로 천구가 돌고 있다. ⓒ. www.themarysue.com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리 천장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평평한 땅이 있고, 그 위로 거대한 유리 반구가 뒤덮고 있으며, 그 구에 촘촘하게 해와 달과 별이 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유리가 깨지지 않고 하늘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유리 공간 사이에 제5원소로 보이지 않고 느낄 수도 없는 물질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우주관은 한동안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자리잡고 한동안 천문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담이지만, 제5원소의 존재는 19세기 말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으로 반증되기 전까지 ‘에테르’라는 존재로 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동그라미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A.D. 83~168)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파르코스 등 여러 천문학자의 이론을 합쳐 새로운 천동설을 제시했다. 그의 천동설은 관측을 토대로 형성되었지만, 이것은 당시의 패러다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입각한 것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밝기 변화와 천체의 역행현상1)을 설명하기 위하여 주전원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주전원 역시 관측 결과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중세 기독교 사회의 가치관에 부합했기 때문에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역할하며 오랜 시간 동안 신뢰받는 이론으로 존재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보여준다. 지구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 태양과 행성들이 돌고 있으며, 모원 위에 주전원이 돌고 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터 시스, 1997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보여준다. 지구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 태양과 행성들이 돌고 있으며, 모원 위에 주전원이 돌고 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터 시스, 1997
새로운 이론, 그리고 반전

16세기, 폴란드의 한 성직자가 우주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천동설을 반박하며, 세상의 중심에 태양을 놓고 그 주변을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당대 최고의 관측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에 의해 반증된다. 티코 브라헤는 자신의 육안 관측을 토대로, 연주시차2)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완벽하게 반박했다. 물론 관측의 결과만이 반박에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티코 브라헤를 포함한 여러 천문학자들, 그리고 성직자들은 기존의 천동설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종교적 관점에 의해 하느님의 지구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뿐만 아니라 천동설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 역시 모두 부정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 패러다임의 전환

그러나 그 이후, 현재 우리는 지동설을 확고히 믿고 있다. 오히려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소수이며, 천동설을 주장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고는 한다. 그렇다면 티코 브라헤에 의해 완벽히 반박당했던 지동설이 어떻게 해서 정설(正說)로 자리잡게 된 것일까?

그것은 코페르니쿠스 이후, 요하네스 케플러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동설의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했을까? 사실 당시의 패러다임과 그간의 관측 자료에 의거하면 당연히 천동설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보여준다. 중심에 태양이 있고, 그 주변으로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터 시스, 1997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보여준다. 중심에 태양이 있고, 그 주변으로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터 시스, 1997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연주시차 관측 실패라는 치명적 반증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지지한 것은 경험적 증거뿐만이 아니라 이론이 지니고 있는 잠재성, 수학적 단순성 등이 영향력을 주었다. 당시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은 모원과 주전원의 도입, 공전 궤도의 초점 문제 등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이었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수학적으로 설명하기도 간편했으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이러한 이론의 단순성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연주 시차는 결국 발견되었고, 지동설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http://study.zum.com/
연주 시차는 결국 발견되었고, 지동설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http://study.zum.com/

지금 우리는 하나의 패러다임 아래서 살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따분하기만 했던 지동설이라는 과학 이론이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 우주관이 지동설이라는 패러다임으로 고정되었다 하더라도 언제 또다시 패러다임이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글 김현지(mokuki@naevr.com)


1)  지구에서 천체의 일주 운동을 관측할 때, 원래 공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
2)  지구의 공전 운동에 의해 천체를 바라보았을 때 발생하는 관측상의 방향 차이에 따라 생기는 각


참고 자료

인문사회계 학생을 위한 과학 기술의 철학적 이해, 한양대학교 과학철학교육위원회, 한양대학교 출판부, 제5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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