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태어났을 때에, 지구에는 이미 안정적인 하늘과 땅, 바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류는 땅을 딛고 하늘을 어깨에 짊어진 채 태어난 종족이다. 즉, 우리는 우리 조상 때부터 항상 밤하늘과 함께 해온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나 사냥을 할 때, 부족들끼리 모여서 캠프파이어를 할 때에도 고개를 들면 항상 그들의 머리 위에는 신비로운 하늘이, 위대한 우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학자들이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듯, 과학자들이 인류 탄생에 대해 궁금해하듯,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세계는 대체 어떤 모양인 걸까?

 

인류 역사 초기에는 망원경도 없었고, 과학 법칙에 대한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학설’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의견’을 내놓았다. 따라서 당시엔 매우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우주관들이 존재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하늘과 땅 자체를 신의 몸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누트라는 여신이었고, 대지는 게브라는 신이었다. 두 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으며, 누트는 게브 위의 산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동쪽 하늘에서 뜨는 태양은 태양신이 배에 태워 오는 것으로, 밤에 태양이 없어지는 것은 천공의 신인 누트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잡아먹힌 태양은 몸속을 지나 다음 날 아침, 누트의 무릎에서 다시 솟아난다고 믿었다.

인도의 고대 우주론 상상도 / http://925rebellion.com/16734/
인도의 고대 우주론 상상도 / http://925rebellion.com/16734/

반면 고대 인도인들의 우주는 인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아주 긴 코브라 위에 거북이가 올라타 있고, 거북이의 등 위에는 세 마리의 코끼리가 있다. 이 코끼리들은 바다로 둘러싸인 반구 형태의 대륙을 떠받치고 있는데, 이 위에 다시 네 마리의 코끼리가 있어 신과 인간의 세계를 구분한다. 태양, 달, 별들은 이 주위를 돌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고대 우주론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 나라나 지역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 특성과 우주의 개념을 섞어 놓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천문학은 과학이나 학문이라기보다는 구전동화 정도의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천문학은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우주에 대한 의문을 품은 것은 비단 서양인만이 아니었다. 고대 동양에서의 우주론은 대부분 중국에서 발전했는데, 크게 지평천평설, 지평천구설의 두 갈래로 나뉜다. 지평천평설은 하늘과 땅이 평행하며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는 우주론이다. 반면 지평천구설은 땅은 평평하지만, 하늘은 동그란 모양의 구로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흔히 알고 있는 개천설, 혼천설은 이 두 우주론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두 우주론 중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은 혼천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천구는 오로지 한 개이며, 별들은 하늘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텅 빈 공간 속을 움직인다. 또한 외계 공간은 공기로 차 있는 게 아니라 텅 빈 공간 속을 움직인다.’고 하여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들과 매우 흡사한 우주론을 성립했었다. 만약 동양의 천문학을 계속 연구했더라면, 지금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과학 이론을 성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대에는 동양 국가들이 학문적인 부분에서 월등했지만, 이를 법칙으로서 확립한 것은 서양인들이었다. 서양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생각’이 정말 ‘학문’의 형태를 띠고 발전하기 시작한 건 중세 때부터다. 이때부터 대중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티코 브라헤(Tycho Brahe), 케플러(Kepler), 갈릴레이(Galilei) 등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우주론이 ‘ 구전동화’의 수준을 넘어서 ‘한문소설’의 수준이 되었을 때, 그 필두에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있었다. 그는 밤하늘을 관측하여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등 지구 외의 다른 천체들을 천문 체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한 가지 큰 결함이 있었다. 바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중세 우주론은 이것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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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을 기반으로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그 모델을 따르자면,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때까지는 천체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과 부전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큰 궤도를 돌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궤도를 갖고 있다 보니, 행성들의 궤도가 너무 복잡해졌다. 물론 오른쪽의 그림과 같이 예쁜(?) 모양의 궤도를 그릴 수는 있지만, 모든 행성들이 이런 복잡한 궤도를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방법을 통해 우주 전체를 설명하려면 수 십 개의 주전원과 부전원이 필요했다. 또한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을 배열할 때, 공전주기가 짧을수록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짧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성이 태양보다 지구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등의 오류가 발생했다. 이런 오류들을 수정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우주를 구성하면 오른쪽 그림과 같이 천체들의 궤도가 깔끔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수학적, 관측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기엔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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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한 해 농사를 위한 봄철의 밭 갈기와 같았다면, 여기에 비료를 뿌려준 것은 티코 브라헤다. 티코 브라헤는 17세에 겪었던 일식 현상을 계기로 천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천체 관측 데이터들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아주 오랜 기간 동안(평생에 걸쳐) 밤하늘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육안으로 관측할 때 발생하는 오차를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천문학계의 슈퍼컴퓨터라고나 할까? 비록 종교적 관념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상황 때문에 천동설을 강하게 부정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관측 결과는 제자인 케플러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그 유명한 케플러 법칙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자연과학이라는 토양 위에 현대 우주론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이다.

갈릴레이가 관측한 금성의 위상 변화 / http://www.astronomy2009.org/static/ar~chives/images/large/galileo_12.jpg
갈릴레이가 관측한 금성의 위상 변화 / http://www.astronomy2009.org/static/ar~chives/images/large/galileo_12.jpg

이 씨앗의 싹을 틔운 것은 갈릴레이다. 그는 진작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었다. 갈릴레이가 살았던 당시에는 망원경을 흔하게 살 수 있었는데, 덕분에 그는 천체 관측을 통해 다양한 사실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는 망원경을 직접 개조하여 뛰어난 배율로 금성의 위상을 관측해냈다. 이는 행성들이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즉, 그전까지는 단지 ‘천동설이 복잡하기 때문에 지동설이 좀 더 말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갈릴레이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천동설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제대로 된 우주의 틀을 알게 되었고, 이후 아인슈타인, 에드윈 허블, 조지 가모브 등의 활약으로 현재의 빅뱅 우주론이 탄생하게 된다.
과학은 항상 객관적인 사실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인간이 걸어온 자취를 보면 우리가 서술하는 자연과학이라는 게 항상 옳았던 것만은 아니다. 고대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같은 위대한 문명을 이루면서도 지구가 둥다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는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공위성 등 최첨단 기술로 측정한 결과를 보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법칙에 아주 조금씩 어긋난다고 한다. 10년 정도 후엔 뉴턴이 인류 전체를 속인 희대의 사기꾼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과학은 단 한 번도 진리 그 자체던 적이 없었다. 과학이라는 것은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껏 생각하고, 상상해보자. 우리가 세운 가설과 이론이 훗날 법칙이 되어 길이 남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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