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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적왕이 될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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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는 존경하는 해적이 그에게 맡긴 밀짚모자를 쓰고 모험을 떠난다. 모자는 곧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고, 그는 ‘밀짚모자 루피’ 로 불리며 대 해적시대의 슈퍼 루키로 자리잡게 된다.

우리의 우주에도 밀짚모자가 있다. ‘밀짚모자 은하’ 라고도 불리는 솜브레로1) 은하가 그것이다. 처녀자리 은하단의 남쪽에 위치하며, M104 2) 또는 NGC 3) 4594라고도 표현한다. 또한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친근한 이름과 모양과는 달리 크기는 우리은하의 반 정도로 어마어마하다.4) 지금부터 이 솜브레로 은하에 대해 알고 있었던, 알 수도 있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1. 알고 있었던 이야기: ‘비주얼 좀 되는’ 은하
밤하늘의 수많은 은하들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솜브레로 은하는 그 중에서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밝은 중심부와 어두운 먼지 띠가 대비되면서 은은한 ‘밀짚모자’ 모양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이 은하가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은하를 찬찬히 살펴보자. 솜브레로 은하는 둥근 모양 때문에 잘 부각되지는 않지만 은하핵을 중심으로 나선팔이 휘감고 있는 정상 나선 은하이다. 이 둥근 모양은 크고 밝은 중심부와 주변을 둘러싼 헤일로5) 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솜브레로 은하의 특징으로는 우선 일반 은하에 비해 유독 큰 중심부와 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먼지 띠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이 이루는 모양이 마치 밀짚모자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솜브레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2. 알 수도 있는 이야기: 이래봬도 좀 무거워요
우리은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은하들이 중심부에 블랙홀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측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는 ‘질량’ 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은하는 그 핵을 중심으로 주변 천체들이 분포하고 활동하는데, 이들의 운동을 연구해 보면 그 중심부에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진 천체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엄청나게 무거운 천체가 ‘중심을 딱 잡아주어야’ 은하가 유지되고, 그 안에서 별도 태어나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무거우면서 크기가 작은 천체로는 현재까지 블랙홀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솜브레로 은하도 마찬가지로, 중심부에 강력한 초거대질량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6)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관측을 통해 솜브레로 은하 내 별의 활동들이 유지되려면, 은하 중심부에 태양 질량의 10억 배 이상의 질량(블랙홀)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초거대질량블랙홀을 중심으로 솜브레로 은하의 주변을 커다란 헤일로가 감싸고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이 헤일로의 질량이 비교적 가벼울 것으로 예측했지만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예상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이 밝혀졌다. 밀짚모자라는 이름이 가지는 어감과는 달리, 결코 가볍지 않은 덩치 큰 녀석인 것이다.

3. 알지 못했던 이야기: 밀짚모자의 비밀
솜브레로 은하의 먼지 띠(고리 형태로 은하를 감싸고 있다.)가 정확히 어떤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아직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우주의 ‘먼지’ 이기 때문에, 이 띠에서 솜브레로 은하의 별들이 가장 활발하게 형성된다고 한다. 마치 성운 안의 먼지가 밀집된 지역에서 별이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스피처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토대로, 천문학자들은 이 솜브레로 은하가 일반적인 나선 은하와 달리 거대 타원 은하와 나선 은하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라고 주장했다(그들은 ‘타원 은하가 나선 은하를 삼켰다’고 표현했다). 그 동안 알려져 왔던 가시광선 이미지로만 보면 솜브레로 은하는 일반적인 나선 은하지만, 적외선 이미지로 보면 큰 타원 은하(청색과 녹색 계열)와 얇은 원반형 은하(붉은 계열)가 모두 나타나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며 아직 충분한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이런 형태는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에 꽤 흥미로운 연구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렇게 솜브레로 은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이 밀짚모자가 ‘덮고 있는’ 비밀을 조금씩 더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우주 밀짚모자’ 는 여전히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들로 가득하지만, 그 세계는 오늘도 우리에게 멋진 경관을 선사하며 묵묵히 돌아가고 있다. 많은 은하들이 그러하듯이 솜브레로 은하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한 번,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향한 호기심에 두 번 설레는 천체인 것이다.
언젠가는 솜브레로 은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솜브레로 은하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가졌던 호기심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은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는 천문학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글 장예슬( astrojang00@gmail.com )
1) 이 솜브레로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밀짚모자와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멕시코인들이 주로 쓰는 테가 넓고 머리 부분이 높은 모자를 말하며, 주로 밀짚이나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다.
2) 메시에 목록의 104번째 천체라는 의미. 메시에 목록에 관해서는 우주라이크 홈페이지의 ‘메시에 동물원’ 기사를 참고하자.
3) New General Catalog의 약자. 천문학에서 쓰이는 관측 가능한 성운, 성단, 은하 등의 천체를 정리한 목록이다.
4) 사실 천문학적인 관점에서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는 밀짚모자 중에서는 제일 크다.
5) 성간물질과 구상성단 등으로 구성되어 은하 주변을 구름처럼 감싸고 있는 것을 말한다.
6) 질량이 태양 질량의 수십만 배~수십억 배에 이르는 가장 큰 종류의 블랙홀을 말한다.
참고 자료
http://www.space.com/
http://scienceon.hani.co.kr/
http://www.nasa.gov/
https://ko.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