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심연에 조용히 머물러 있던, 우주 저편에의 경외심
2014년 11월,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왔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전공이 아닌 사람들도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관련 소식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례적으로 천문학 관련 뉴스가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탐사선 로제타호가 64억km의 궤도를 지나 10년 8개월여 만에 무사히 혜성에 도착했다는 뉴스였다. 2004년 유럽우주기구(ESA)가 발사한 혜성탐사선 ‘로제타(Rosetta)호’. 혜성 이름은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다. (이하 67P 혜성)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사무엘 굴키스 박사를 포함한 연구진들은 로제타호와 그 내부의 탐사로봇인 필레에 의해 수집된 정보가 태양계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탐사 대상으로 왜 하필 혜성이 선택되었는지, 지구와 67P 혜성 간의 실제 거리는 5억 1000만km인데 왜 굳이 64억km나 돌아서 이동해야 했는지, 1년간의 정확한 탐사를 위해 10년 8개월간의 우주를 어떻게 여행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쯤 되면 태양계와 생명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 작은 혜성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로제타호가 착륙한 혜성의 이름에 숨겨진 의미
일단 이 녀석은 이름부터 한국인에게 어렵다. 로제타가 착륙한 혜성인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는 6.45년의 주기로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혜성의 명칭은 1969년 9월 11일 이 혜성을 처음 발견한 우크라이나 과학자인 클림 추류모프와 스베틀라나 게라시멘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숫자 ‘67’은 운행주기를 가진 혜성 목록 가운데 67번에 올라 있다는 뜻이며, ‘P’는 태양공전 주기가 200년보다 짧은 단주기 혜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0년 이하의 주기를 가진 혜성은 단주기 혜성으로 분류되는데, 혜성 67P는 그 짧은 주기로 인해 궤도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어 탐사선을 보내기에 적합한 천체로 선택됐다.
로제타호는 왜 비교적 쉬운 직선 궤도를 포기했나?
로제타호는 2004년 지구를 떠나 11년가량 지구-태양 거리의 42배가 넘는 65억㎞를 비행해 67P 혜성에 도착했다. 로제타호는 왜 실제 거리인 5억 1천만km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비행했을까? 67P 혜성의 경우 근일점(태양 주변을 도는 천체가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에서 지구 궤도에 매우 가까워진다. 이때 탐사선을 보내면 비교적 쉽게 혜성을 찾아갈 수 있지만,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혜성의 핵에서 분출된 가스와 먼지가 혜성을 뒤덮게 된다. 혜성이 코마로 둘러싸이게 되면 과학자들은 혜성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 이에 과학자들은 혜성의 활동이 최소로 일어나는 지점을 선택했고, 10년 8개월간 로제타호는 직선 궤도가 아닌 원형 궤도를 그리면서 우회해 혜성을 따라 잡은 것이다. 보통 혜성은 소행성대가 있는 3AU거리(AU: astronomical unit는 천문학에서 사용되는 길이의 단위로 지구와 태양과의 평균 거리이다. 2013년 기준으로 149,597,870,700 m로 정의되어 있다.)를 지나면서 가스와 먼지를 분출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혜성이 이곳에 도착하기 이전에 탐사선이 도착할 수 있게끔 궤도 설계를 미리 한 것이다.
혜성의 속도를 리모델링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눈물어린 고뇌
혜성은 태고에 만들어진 얼음과 먼지 덩어리이다. 혜성의 지름은 4.4킬로미터, 평균 온도는 영하 70도, 표면에서는 1초에 3백 밀리리터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혜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행성들 너머의 외부 태양계를 배회하고 있다. 혜성이 태양계의 탄생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특히 경이롭게 느껴진다. 혜성에는 물과 먼지, 생명을 구성하는 근원인 복합유기체 분자가 들어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가장 마음 썼던 것은 혜성의 속도이다. 혜성에 안전하게 착륙하려면 탐사선은 혜성과 같은 속도로 나란히 날아야 한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혜성에 로제타호가 착륙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혜성과 같은 속도로, 더불어 나란한 각도로 비행할 때 로제타호의 완전한 착륙이 이루어질 수 있다.

로제타호의 안전한 착지는 절대 ‘우연’이 아니야
혜성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긴 타원 궤도를 무리 없이 날아가기 위해서 탐사선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상태에서 초속 9.9km의 꽤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사실 처음 발사된 로제타호는 혜성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또한 혜성은 중력이 지구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착륙 시 탐사 로봇을 잡아당기는 힘이 미약하다는 뜻이다. 로봇이 혜성에 완전히 달라붙지 못하므로 이때 로봇은 언제든지 다시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중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로제타호의 속도를 높일 특별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를 중력 가속도 비행법 혹은 일명 새총 방법이라고도 한다.
탐사선이 어떤 행성의 중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탐사선은 그 행성과 함께 공전하게 되는데, 이때 이 공전 속도를 이용해 탐사선의 속도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다시 그 중력권을 탈출하게 된다. 로제타호가 태양 둘레의 궤도를 돌 때 지구의 중력이 이를 뒤로 잡아당긴다. 지구의 강한 중력은 로제타호를 세게 잡아끌었다가 이를 우주로 다시 집어던지는 역할을 했다. 간단하게 새총을 떠올려보자. Y자 모양의 새총 사이에 돌멩이를 끼우고 고무줄을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돌이 멀리 날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 때 돌의 속도는 빨라지고 방향도 바뀌게 된다. 즉 지구의 도움으로 로제타호는 시속 10만 8천km가 되었고 거의 혜성의 속도를 따라잡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로제타호는 총 지구에서 세 번, 화성에서 한 번, 중력의 도움을 받아 2011년 67P혜성을 향해 출발했던 것이다. 로제타호는 혜성의 속도를 낸 최초의 비행체이다.

태양계의 화석 같은 존재, 혜성
고대의 얼음, 먼지, 기타 물질로 이뤄진 혜성은 오랫동안 과학자들 특유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물체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혜성은 45억여 년 전 태양계 초기의 모습을 사실상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성을 연구하면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혜성은 물과 유기 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혜성이 지구에 물을 가지고 와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로제타호를 통해 알아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과학계에서 끊임없는 논쟁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기원이다. 이는 학계의 오래된 미스터리이다. 독자들도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과학계의 골치 아픈 논쟁 하나
물의 일부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수소 원자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수소 대신 동위 원소인 중수소로 구성되기도 한다. 중수소에는 중성자 한 개도 포함된다. 로제타의 분석에 따르면 67P 혜성의 물은 지구상의 물보다 중수소-수소의 비율이 3배 높다. 물의 주된 원천은 소행성일까, 얼음이 많은 혜성일까? 과학자들은 소행성 조각인 운석에서 발견되는 물의 화학적 구성이 지구상의 물과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소행성은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목성과 화성 사이의 궤도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혜성은 태양계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혜성의 궤도 패턴은 매우 크고 소행성 궤도보다 훨씬 길쭉하기 때문에 태양계 내부로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즉 혜성과 지구와의 충돌 확률보다는 소행성과 지구와의 충돌 확률이 더 크다는 얘기이다. 1999년 발표된 헤일-밥 혜성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몇몇 연구는 혜성의 물이 지구의 물과 화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2011년 103P/하틀리 2 혜성의 물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이 혜성이 지구의 물과 동위 원소 조성이 같은 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로써 물의 기원이 소행성이라는 주장이 크게 약화됐고 얼음이 많은 혜성이 지구에 물을 가져다줬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로제타호가 보내온 데이터에 따르면 지구의 물 성분과 혜성의 물 성분은 물속에 함유된 중수소 대 수소의 비율(D/H)이 많이 달랐다. 혜성의 D/H 비율이 지구의 그 비율보다 3배가량 높았다. 혜성의 물에 들어있는 중수소는 530ppm인 반면, 지구의 물에 들어있는 중수소는 150ppm정도였던 것이다. 지구의 물 분자는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중수소와 같은 수소 동위원소와 산소 동위원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물은 지구의 물 분자와 화학적 성질이 다르다. 질량, 녹는점, 끓는점, 밀도 등이 모두 다르다.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이 태초에 우주의 어딘가에서 유입된 것인지, 지구 내부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 이는 다만 과학자들의 가설로 존재할 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개의 가설이 양팔 저울처럼 번갈아가며 우위를 점해오고 있다.

1년 사이의 변화
페이스북의 rosetta Mission 페이지에 들어가면 우리는 네이버에 검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의 이미지는 NavCam(Navigation Camera)로 찍힌 사진인데, 2014년 8월 6일에 촬영되었다. 그 아래의 이미지는 정학히 1년 뒤인 2015년 8월 6일에 촬영된 것으로, comet은 그 궤도를 따라 태양에 훨씬 더 근접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태양빛을 받는 강도도 무려 7배 가까이 커져 comet의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태양 방사선이 comet의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녹임에 따라, 이 얼음 고체들은 기체로 승화되어 우주로 퍼져 나간다. 기체는 먼지들을 끌어당기고 그것들은 함께 comet의 흐릿한 대기, 즉 coma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comet의 태양에너지에 대한 노출량이 증가됨에 따라 둘 사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난다고 믿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주 한 구석에서 외로운 연구를 하고 있을 필레
로제타호 내부의 탐사로봇 필레는 올해 말까지 46억 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함께 탄생한 혜성의 생생한 지표면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물과 아미노산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진 혜성의 암석과 토양을 분석한 데이터가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과학자들의 손길이 바빠질 것이다. 혜성의 착륙 지점 선택, 로제타호와 필레 사이의 분리의 어려움, 언덕과 절벽 등 거친 분화구들로 이루어진 혜성의 표면, 곡선 궤도 비행의 문제, 비행 속도를 높이는 문제, 엄청난 원거리에서도 관제센터에서 탐사선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던 공학적인 기술력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로제타호의 여정이 어쨌거나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고무적인 사실이다. 독자들은 http://rosetta.esa.int에 접속하면 어떤 다른 기관보다도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ESA(유럽우주기구)에서는 로제타호 홍보를 위해 “Ambition the film”이라는 제목의 영상도 제작했는데, 이 영상물은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태양계와 생명의 근원이라는 주제는 일상생활에서 고민하기엔 얼핏 거창해 보이지만, 이는 과학자, 공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로봇 필레는 2015년 12월말까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우주에서 생을 마감한다. 필레가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