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정인 – 달빛 아래 밀애

월하정인 – 달빛 아래 밀애

월하정인

신윤복, 어떤 화가인가.

조선 3대 풍속 화가인 혜원 신윤복은 애정관계나 풍류를 즐기는 내용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실제 혜원의 그림을 보면 기생과 양반이 서로 어울려 풍류를 즐기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그럴까, 신윤복은 흔히 저속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데는 일제의 영향이 크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화가들이 혜원의 그림을 원본으로 한 춘화를 그렸었는데 이 때문에 혜원의 춘화들이 부각되어 알려졌던 것이다. 신윤복이 향락적인 그림을 많이 남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윤복을 단순히 저속한 화가라 평할 수는 없다. 신윤복은 자신의 그림으로 위선적인 조선의 단면을 비판하였으며 억압 받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비추었다. 신윤복에 대한 기록이 적은만큼 우리가 그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지만 신윤복은 다른 풍속 화가들과는 다른 조선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月沈沈夜三更 월침침야삼경 달빛 침침한 삼경
兩人心事兩人知 양인심사양인지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네

CREDIT : http://simondrax.com
초승달은 아랫방향으로 빛난다. CREDIT : http://simondrax.com

월하정인 속 진실

담벼락 위에 걸린 어스름한 달빛 아래 쓰개치마를 쓴 기생과 등을 들고 있는 어느 한량이 은밀하게 만났다. 늦은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고 있는 이 남녀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밝은 보름달이 아닌 어두운 손톱모양의 달은 어쩌면 이들에게는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달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만약 달의 모양과 이름에 대해서 배웠다면, 여러분은 이 달을 초승달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손톱모양의 달이 오른쪽 방향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을 낸다. 그러니까 달이 빛나는 방향에는 태양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해가 진 후 떠있는 초승달은 태양이 있는 방향인 지표면을 향하여 빛나게 된다.

다시 이 그림을 보면 이 ‘초승달’은 태양의 반대쪽 방향인 하늘 쪽으로 빛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달은 태양이 하늘에 있는 낮에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윤복이 ‘틀린’ 그림을 그렸던 건가?! 신윤복은 이 남녀의 비밀스런 만남을 표현하려다가 ‘잘못된 초승달’을 그린 것일까? 그림 속의 이런 달은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없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신윤복은 이 남녀의 밀회를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우리는 이런 모양의 달을 부분월식이 일어났을 때 볼 수 있다.

CREDIT : http://astro.kasi.re.kr/Main/ContentViewForm.aspx?MenuID=1280
CREDIT : http://astro.kasi.re.kr/Main/ContentViewForm.aspx?MenuID=1280

월식 현상

월식현상은 태양과 지구, 달이 태양-지구-달의 순서로 일직선에 배치되었을 때 달을 비춰야 할 태양 빛이 지구에 가려서 달이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인 본영에 전부 들어갔을 때에는 개기월식이라 하고 일부만 들어갔을 때에는 부분월식이라고 부른다. 달이 지구의 반그림자인 반영에 들어갔을 때를 반영식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태양 빛이 일부만 가려지기 때문에 달빛이 약간 어두워지기만 한다.

월식은 반영식-본영식-반영식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달의 지구에 대한 공전방향 때문에 달은 왼쪽부터 가려지기 시작한다.

태양-지구-달 순으로 나란히 섰을 때 우리는 보통 보름달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달 보름달을 볼 수는 있지만 매달 월식을 볼 수는 없다. 그것은 하늘에서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와 달이 지나는 길인 백도가 약 6°정도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이 약간의 어긋남 때문에 우리는 보름달인 날, 백도가 황도가 만나야만 월식을 볼 수 있다.

CREDIT : http://apod.nasa.gov/apod/ap130524.html
부분월식이 일어날 때 짧은 간격으로 찍어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사진인데, 본영에 가려져 까만 부분과 그 주위에 빛이 약간 어두워진 반영을 확인할 수 있다. CREDIT : http://apod.nasa.gov/apod/ap130524.html

월하정인이 그려지던 날?

달은 시간에 따라서도 떠 있는 높이가 다르지만 계절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이 그림 속의 달은 가장 높게 떠있을 시간인 삼경에도 처마 높이에 걸려있을 정도로 고도가 낮다. 달은 겨울 보다 여름에 고도가 더 낮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여름에 그려졌을 것이다. 여름과 부분 월식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신윤복이 활동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사료를 살펴보면 조건에 맞는 부분월식이 딱 두 번 있었다고 한다. 1784년 8월 30일과 1793년 8월 21일인데 그 중에 1784년 8월 30일에는 전후로 계속 비가 왔다는 기록이 있다. 비가 온 날에는 월식을 보지 못했을 테고 이 남녀도 이렇게 만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부분 월식이 일어난 날인 1793년 8월 21일, 밝은 보름달 대신 이들의 사랑을 감춰주는 월식 아래에서 이들의 사랑이 대신 밝게 빛났을 것이다. 밝은 달빛 대신 신윤복도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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