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초여름 장마가 끝나면 아마추어 천문가들은 설레기 시작한다. 비로소 ‘은하수’의 계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실 은하수는 모든 계절마다 볼 수 있지만 역시 으뜸은 우리 은하의 중심을 바라보고 있어 두껍고 볼거리도 많은 여름철 은하수이다. 게다가 그냥 보아도 예쁜 여름철 은하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어린 시절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견우와 직녀 이야기이다. 그런데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밝게 빛나는 거문고자리의 ‘직녀별’ 베가와 독수리자리의 ‘견우별’ 알타이르가 만드는 이 슬픈 이야기에 의외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견우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독수리자리 알타이르와 다르다는 것. 그렇다면 직녀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견우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여름철 대삼각형 (거문고자리의 베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 백조자리의 데네브) ⓒ. APOD
여름철 대삼각형 (거문고자리의 베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 백조자리의 데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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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하늘에서 보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

견우를 찾기에 앞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 견우는 이끌 견(牽), 소 우(牛)를 써서 소를 끄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직녀는 짤 직(織), 여자 여(女)를 써서 베 짜는 여자라는 뜻이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손녀였는데, 옥황상제는 손재주가 좋고 성실한 직녀를 매우 예뻐하여 목동 견우와 결혼하게 하였다. 그런데 옥황상제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으니, 견우와 직녀가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베를 짜는 일과 소를 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한 옥황상제는 둘을 갈라놓아 일 년에 한번 칠월 칠석에만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칠석에 내리는 비를 견우와 직녀가 만나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이다.1)

우리 조상들은 밤하늘에 슬픈 사랑 이야기를 별자리로 새겨 놓았다. 이 별자리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것과 다른 ‘동양 별자리’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별자리는 말 그대로 별이 있는 자리로서 서양 천문학자들이 하늘을 88개로 나눠놓은 영역을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별자리라 하면 떠오르는 별을 이어놓은 그림은 그 영역 안에 있는 별 중 밝은 별을 이어놓은 것일 뿐이다. 이러한 서양 별자리들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별자리들 중 북반구에 있는 것들은 그리스의 대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대부분 확립되었다. 그래서 오리온, 쌍둥이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많은 별자리들이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견우와 직녀가 있는 동양 별자리는 조상들이 살았던 세상을 하늘에 투영해 놓았다. 북극성 주위에는 옥황상제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하늘나라의 관리들과 커다란 시장이 있다. 특히 시장에 있는 대장장이, 마구간 역할을 하는 별자리와 물건 크기를 재는 도량형 별자리까지 생각해 놓은 것을 보면 그 세심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러다 보니 별자리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게 되고, 실제로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별자리는 293개로 서양 별자리의 3배가 넘는다. 이렇게 별자리가 많이 필요하다보니 별자리가 3개 이하의 별로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별자리가 바로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직녀 별자리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상에 표시된 견우, 직녀, 하고의 위치 ⓒ. http://www.ryubangtaek.org
천상열차분야지도 상에 표시된 견우, 직녀, 하고의 위치
ⓒ. http://www.ryubangtaek.org

위에서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직녀 별자리는 서양 별자리 중 거문고자리의 일부에 해당하는데, 별 3개가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을 직녀성, 혹은 직녀1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견우 별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빨간색으로 표시된 견우 별자리는 우수(牛宿)라고도 불리며 직녀 별자리와 은하수를 두고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수(宿)란 동양 별자리 체계에서 하늘을 28개로 나눈 것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직녀 별자리는 형식상 견우 별자리 우수에 속해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견우성 알타이르는 은하수 중간에 가까웠는데 견우 별자리를 은하수에서 멀게 그린 것에 의아함을 느낀 이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알타이르 자리에 ‘견우’ 별자리 대신 ‘하고’ 별자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고는 강 위의 북이라는 의미로, 전쟁터에서 장군이 지휘할 때 사용하던 북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타이르라 부르는, 하고 별자리의 가장 밝은 별은 북을 치며 군사를 지휘하는 대장군별이다. 그렇다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견우 별자리는 무엇일까?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의 위치를 서양 별자리와 맞춰보면 견우는 염소자리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인 견우성은 다비(Dabih)라고 불리는, 그렇게 밝지 않은 3등성이다. 그렇다면 알타이르와 다비, 둘 중에 어떤 것이 조상들이 생각했던 진짜 견우성일까?

2. 다비 vs 알타이르, 천문학으로 밝혀낸 견우의 행방

견우성에 대한 위와 같은 의문은 수 세기 동안 계속 제기되어왔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견우성은 다비라 나타나 있지만, 많은 문학작품과 민속예술에서는 견우성을 알타이르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견우직녀 설화에서 견우의 이름을 ‘하고’라고 서술하고 있다. 현대에도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이어져 천문학계에서는 견우성을 다비라고 보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천문대의 관측프로그램에서는 알타이르를 견우성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자는 다비를 ‘견우성’으로, 그리고 알타이르를 ‘밝은 견우성’, 혹은 ‘견우대성’으로 소개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천문학자들이 다비와 알타이르 중 어떤 별을 견우성으로 보아 왔는지에 관해 현대 고천문학자들이 연구하여 논문을 내놓았다.2)

연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수록된 ‘견우’ 관련 천문 기록들을 모아 실제로 그 현상이 어느 별에서 일어나는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천문 현상들이 달이나 금성이 견우를 범했다, 즉 견우 별자리에 걸치거나 접근했다는 내용인데, 달이나 금성의 운동이 하늘에서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조선 천문학자들은 다비를 견우성이라 불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달이나 금성은 하늘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 주위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황도 위에 있는 별자리 12개중 하나인 염소자리에 있는 다비가 행성들과 만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3)

물론 여름철 별자리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시되었던 견우성이 3등급이라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딸인 직녀와는 달리 평범한 인간이었던 견우의 신분, 그리고 다소 어두운 별임에도 하늘을 28개로 나누는 28수 중 하나를 대표하는 별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은하수를 기준으로 직녀와 정 반대의 위치에 있었다는 세 가지 이유에서 옛날 사람들이 다비를 견우성으로 보았던 것이 타당해 보인다.

오히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요즘 천문대에서 알타이르를 견우성으로 소개하는 이유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3등성인 견우성을 굵게 표현했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3등성이 1등성이나 2등성 못지않게 밝은 별이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급격한 도시화와 대기오염 때문에 광해가 심해지면서 더 이상 도시에서, 그리고 교외에서도 3등성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천문대의 경우에는 천문학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 원래 견우성 다비보다는 더 잘 보이고, 역사적으로도 계속 논의가 있었던 알타이르를 견우성으로 소개함으로써 방문객들이 더욱 밤하늘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을 우선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mypi.ruliwe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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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면 견우는 직녀와 헤어진 것도 모자라 점점 더 밝아지는 도시의 불빛을 피해 은하수로 쫓겨나고 있는 슬픈 별이 아닐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 진선호(forestine@naver.com)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견우직녀설화] 항목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2170.
2) 안상현 외, 「견우성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해석」, 천문학논총 제 25권 4호, 129-139p, 2010.
3) 위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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