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과학?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그려낸다. 그 언어가 심각하게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똥별에 소원을 빌겠다고 기다려봤자 어차피 1초 만에 사라지는 거라 안 돼.” 라든지 “신기해 할 것 없어. 비행기가 뜨는 원리는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한 건데 … ” 하면서 흥을 깨는 이들을 낭만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그의 시 라미아(Lamia) 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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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all charms fly
At the mere touch of cold philosophy?
There was an awful rainbow once in heaven:
We know her woof, her texture; she is given
In the dull catalogue of common things.
Philosophy will clip an Angel’s wings,
Conquer all mysteries by rule and line,
Empty the haunted air, and gnomèd mine—
Unweave a rainbow, as it erewhile made
The tender-person’d Lamia melt into a shade.

냉혹한 학문의 손길 아래, 모든 아름다움은 그 비행을 멈추는가?
한때 천국에는 위대한 무지개가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음성과 감촉을 알았지만,
이제는 단지 평범한 존재들의 따분한 나열로 보일 뿐이다.
철학(과학)은 천사의 날개를 짓밟고
이성의 이름으로 모든 미지를 정복할 것이다.
유령의 하늘도, 요정의 땅도 모두 비워버리고,
연약한 라미아를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했듯이,
과학은 무지개를 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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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카(TROIKA)라는 팀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사실 작년 가을, 학교에서 현대 미술에 관한 강의를 듣다 뛰쳐나온 필자에게 현대 미술은 난해하기만 할 뿐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회가 꽤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천문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오히려 익숙하고 편한 ‘과학’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세상을 더 이상 시적으로 표현 할 수 없다는 존 키츠 씨의 걱정은 기우였나 보다. 트로이카의 작품들은 과학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충분히 낭만적이며 오히려 과학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Sum of all possibilities

: 태양계 행성들의 회합

트로이카_2

트로이카_3Troika, Sum of all Possibilites / 출처 : 대림미술관

태양계의 구성원들은 모두 태양 근처에 있는 태양계 질량 중심을 축으로 공전 한다. 우리 태양계는 과거에 회전하는 거대한 가스구름 덩어리였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그 버릇은 어디가지 않았다. 만일 상상속의 거인이 시곗바늘 돌리듯이 행성들을 움직여서 8개의 행성이 한 줄로 늘어섰다고 생각해보자. 행성의 공전 속도는 태양에서 가까울수록 빠르다. 때문에 어느 한 순간 행성들은 모두 같은 출발선 상에 서게 되었지만 발 빠른 수성은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뛰쳐나가고 느긋한 해왕성은 제일 뒤에서 느릿느릿 기어간다. 결국 다시 행성들이 우주 공간상에서 한 줄로 늘어서려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시간이 남고 할 일이 없다면 한번 모든 행성 회합주기의 최소공배수를 구해보자.)

Sum of all possibilities 는 천천히 회전하는 곡선 호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 순간 이 구조물은 변화하여 이들의 새로운 배열들을 나타내고,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배열들을 보여주고는 다시 처음의 위치로 돌아온다. 지켜보다보면 과연 각자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호들이 원상태로 돌아가긴 할까 의심스러워지지만, 다행이도 다시 처음의 배열로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태양계 행성들과는 달리 12분이면 모든 경우의 수들을 볼 수 있다니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기다려보자.

Dark matter

: 공간속의 은하들

트로이4,5,6출처 : 대림미술관

트로이카의 작품 dark matter (과학자들이 말하는 암흑물질이 아니다!) 는 우리의 시선 방향에 따라 원,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 서로 다른 형태로 보인다. 우리는 동시에 이 입체물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 각도에 서서 이 작품을 묘사한다면 전혀 다른 모양을 설명 하게 된다. 우리는 3차원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망막에 투영된 2차원 세상이기 때문이다.

은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두 장의 은하 사진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사진을 본 사람은 은하는 원형이라고 말할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사진에 있는 은하는 길쭉한 막대모양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일까? 맞다. 둘 다 정답이다.

우주 공간에는 수많은 은하들이 흩어져 있다. 지구에 앉아서 이 은하들을 바라보면 어떤 것은 은하 평면이 우리가 보는 시선 방향에 대해 수직하게 놓여있고, 어떤 것은 평행하게 놓여 있다. 심지어는 비스듬하게 놓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은하가 천구 상에 투영된 모습이기 때문에 그 은하가 공간상에 어떻게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정말 다행이게도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은하들이 있고, 서로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천문학자들은 아주 먼 우주까지 나가서 은하를 다른 각도에서 관측하지 않고도 은하의 3차원적 모습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스크린샷 2015-08-16 16.31.37

Small bang

: 지금도 펼쳐지는 우주

트로이카_9출처 : 대림미술관

여기 Small bang(작은 폭발)이 있다. 중앙에 검은 점을 그리고 물방울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와 같은 원리로 검은 점은 서서히 색색의 자취를 그리며 펼쳐진다. 전시장의 한쪽에서는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조용하고 고요하게 퍼져나가는 과정과는 달리 그 결과물은 다채롭고 꽤 폭발적이다. 검은 잉크 방울에 숨겨져 있던 이 형형색색의 본질은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작업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옛 우주는 요즘 같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별과 은하들이 떠있는 이 우주는 우주의 시작으로부터 대략 40억 년 정도 흐른 뒤에 만들어졌다. 대체 그 이전의 40억 년 동안의 우주는 어땠기에? 우주는 때로는 별이나 은하 하나 없이 깜깜했으며(dark ages), 물질보다는 광자(photon)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도 했다.(radiation era) 또 그 이전에는 빛보다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inflation), 지금까지 밝혀진 물리적 방법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우주도 있었다.

작품 Small Bang이 물방울을 떨어트림에 따라 점점 종이 위로 펼쳐지듯, 우리의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137억 년 동안 지속되던 이 과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 지금도 어디선가 폭발한 초신성에 의해 많은 중원소들이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지고 우리 우주 전체의 중원소 함량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트로이카_11출처 : 대림미술관

 

리처드 파인만,  『발견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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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아름다움 中

화가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꽃 한 송이를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좀 봐, 정말 아름답지?”

나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이때 그 친구가 한다는 소리가 이렇습니다.

“나야 화가니까 당연히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지. 하지만 과학자인 자네는 그걸 알 리가 없어. 과학자라는 건 꽃을 뜯어서 분석한다며 엉망으로 만들 뿐이라구.“

그러면 나는 이 친구가 좀 돌았나 싶어집니다. 그 친구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고, 나도 물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심미적으로는 그 친구가 더 세련되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나도 꽃의 아름다움에 취할 줄 압니다. 뿐만 아니라, 꽃에 대해 그 친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꽃 세포를 상상할 수 있고, 세포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데, 세포와 그 움직임도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세계에도, 내부 구조에도, 그 작용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요. 꽃 색깔이 곤충을 끌어들여 가루받이를 하려고 진화한 거라는 사실은 참 흥미롭지요. 그렇다면 곤충도 색깔을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과학은 거기에 의문을 덧붙입니다. 하등 생물도 미적 감각이라는 걸 지니고 있을까? 아름다운 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참 흥미로운 의문입니다. 알고 보면 과학 지식은 꽃에 대한 흥미와 신비로움과 경이감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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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용 사진의 사용을 허락해주신 대림미술관 홍보팀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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