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화성,장거리커플의 연애 일상사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정말 나에게 어울린다. 나는 지금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글을 창작해낼 수 있는 이유도 내가 지금 그 비슷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 http://www.theplanetstoday.com
화성에 교환 학생을 온지 벌써 두 달. 내가 여름 학기를 보내고 있는 곳은 화성 루나이 평원에 위치한 루나이 대학교(University of Lunae)다. 한국 시간으로 2016년 1월 3일에 처음 들이마신 화성의 인공 대기는 후텁지근했다. 화성은 태양에서 보다 멀리 떨어져 있고, 여긴 그 위에서도 찌그러진 공전 궤도 덕에 연교차가 비교적 덜한 북반구다. 그래도 적도에 가까운 편이라 그런지 햇살이 꽤 따갑다. 차라리 빙수같이 하얗고 시원한 눈이 내리는 지구의 겨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역시 사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결핍을 만들어내는 존재인 것을 오늘도 체념하듯 인정한다.
♂ 화성의 1년
화성-태양간 거리 : (지구-태양간 거리의 약 1.5배)
화성의 공전 속도 : 24km/s로 한 주기에 95AU 이동
화성 궤도 이심률 : 0.0934 (지구의 이심률은 0.0167로, 0에 가까울수록 궤도가 원에 가깝고 1에 가까울수록 길쭉한 타원 모양)
화성 자전 궤도의 기울기 : 25° 11‘ (지구 자전 궤도는 공전 궤도에 비해 23.5° 기울어짐)
화성의 공전 주기 (1년) : 687 지구 일(Day) 또는 669 화성 솔(Sol)
지구와 화성의 궤도는 모두 원에 가까운 타원이다. 화성의 궤도는 지구의 궤도에 비해 조금 더 타원에 가깝다. 지구의 북반구가 타원 궤도상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울 때, 즉 근일점에서 겨울을 맞는 반면 화성의 북반구는 화성과 태양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즉 원일점 근처에서 겨울을 맞고 근일점 근처에서 여름을 맞는다. 그러나 궤도상에서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변하는 정도는 크지 않기 때문에, 두 행성에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자전 궤도가 공전 궤도에 대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화성의 자전축은 지구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화성의 북극성은 지구와 다르다. 지구의 북극성은 작은곰자리의 폴라리스이고, 화성의 북극성은 백조자리의 데네브와 세페우스 자리의 알데라민 사이에 있다. 이 별은 화성의 북극에서 0.5°쯤 떨어져 있어 지구의 북극과 폴라리스 사이의 각도보다 덜 벌어져 있지만 어두워서 육안으로 관측하기 어렵다. 반면 화성의 남극은 꽤 밝은 편인 돛자리 (돗자리가 아니다!) 카파별과 3°쯤 떨어져 있다.
추위를 싫어하는 그는 화성의 여름을 부러워했지만, 여름이 여섯 달 동안 지겹게 이어진다는 걸 듣고는 며칠 후에는 부럽지 않아질 거라고 했다. 한국은 이제 ‘어쩐지 저번 주보다 따뜻한’ 정도의 날씨일 것이다. 지구의 북반구는 벌써 봄이구나.
떠나오기 전, 화성과 지구 사이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머리 아픈 계산을 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무언가 가볍게 건드리는 듯한 손짓을 하며 계산 단계마다의 결과를 흥겹게 내뱉었다.
♂ 화성 달력

ⓒ. https://en.wikipedia.org
화성 이주 후 사용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달력이 제안되었는데, 미국 우주공학자 토마스 간게일(Thoams Gangale)이 고안한 다리안 달력(Darian calendar)이 유력하다. 계절은 북반구 기준이며 두 계절에 걸친 달도 있다.
화성의 24개 월(months) :
봄 – Sagittarius / Dahnus / Capricornus / Makara / Aquarius / Kumbha / Pisces
여름 – Mina / Aries / Mesha / Taurus / Rishabha / Gemini
가을 – Mithuna / Cancer / Karka / Leo / Simha
겨울 – Virgo / Kanya / Libra / Tula / Scorpius / Vrishika

ⓒ. http://ops-alaska.com
그림 3의 지구-화성 달력 계산기 홈페이지에서 화성과 지구의 현 날짜를 알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지구 UTC 기준으로 2016년 3월 18일이며, 화성에서는 216년 메샤(Mesha)월 17솔이다. ‘솔’(Sol)은 화성에서 날짜를 세는 단위이다.

ⓒ. http://en.cite-espace.om
화성의 1솔은 지구의 1일보다 40분쯤 길고, 화성의 한 달은 27~28솔, 1년은 지구의 1.88배이다. 화성은 봄과 여름이 긴 편이라 살기 좋다.
“화성에서 하루는 지구보다 39분 35초쯤 더 기네. 그러면 하루에 40분씩 화성 시간이 느려지겠다. 그치?”
“응. 그리고 시간, 분, 초가 지구보다 2.7퍼센트 길대. 근데 이 차이는 느끼기 힘들 것 같아.”
“아, 시간 자체가 약간 길어지는구나. 24시간 쓰는 건 똑같아요?”
“웅.”
“그러면 24시간을 40분으로 나누면 얼마지? 잠깐만~ 36. 36이면 36일마다 시간 똑같아지겠다. 그치?”
“웅. 몇 분 차이 나는 거 빼면?”
“그리고 18일마다 반대가 되겠네.”
“응. 우주 시각 앱 들어가서 화성 시계 추가하면 좋아요.”
“아, 그런 방법이..!”
여느 때처럼 그는 계산 과정 하나하나를 사뿐히 밟았고,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편법을 소개했다.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잠에서 깼을 때, 점심시간일 때, 그리고 잠들기 전 시간대 중에서 골라 하루에 1~3번 전화하기로 약속했다.
♂ 화성의 시간
화성의 MTC(Coordinated Mars Time)은 지구의 UTC(Coordinated Universal Time)과 비슷하게 자오선(Meridian)을 기준으로 한다. 화성의 하루는 24시간이며 화성의 1시간은 지구의 1시간보다 2.7% 길어 지구보다 40분 긴 화성의 하루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UTC 기준으로 오후 8시 13분인 지금은 MTC로 오후 12시 9분이다. 한국 시간이 UTC보다 9시간 빠르니, 지금 한국과 화성의 시간이 대충 비슷하다. http://jtauber.github.io/mars-clock/에서 현재 UTC와 화성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아쉽게도 내가 화성에 온 지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전화하기를 그만두었다. 지구에 카톡 하나가 가려면 지구 시간으로 무려 6분 30초가 걸린다. 그가 아무리 칼답을 한다고 해도 톡과 톡 사이에 최소 13분의 간격이 있는 것이다. 이건 전화도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그의 질문과 나의 대답 사이에 13분의 공백이 생기는데, 보통 대화에서 이 정도로 긴 침묵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13분간의 고요는 무의식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중간에 한 사람이 전화를 끊어도 전화가 끊겼다는 정보가 6분 30초 후에 전달될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래서 우리는 그냥 카톡, 음성메시지, 영상메시지로 모든 걸 해결하고 있다.
♂ 화성의 위치
화성은 태양계에서 지구 바로 바깥 궤도를 돌고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화성의 모습은 달처럼 다양하다. 이를 테면 태양-지구-화성 순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하는 밤에는 화성의 가장 달덩이 같은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다. 이렇게 일직선상에 있을 때 화성과 지구는 가장 가깝다. 지금 화성과 지구의 위치는 그림 1과 유사하다. (그림 1을 따오고 나서 이 부분을 쓰기까지 며칠이 흘렀다.) 이런 위치에서 화성은 자정 전의 밤에 가장 높이 뜬다.
화성 입장에서 지구는 내행성이다. 지구에서 지구의 내행성인 금성이나 수성을 관측하면, 두 행성들은 일정 고도 이상으로 높이 뜨지 않고, 꼭 새벽이나 저녁에만 뜬다. 금성이나 수성이 가장 높이 뜰 때를 최대 이각이라고 한다. 지구도 화성 하늘 위에서 일정 고도 이상으로 높이 올라가지 않으며,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지구는 보통 달과 겹쳐 보인다. 지구가 화성에 가까이 있거나 최대 이각에 있을수록 지구와 달이 더 잘 구분되어 보인다. 지구와 달도 지구에서 본 달처럼, 정확히 말하면 금성이나 수성처럼 위상변화를 한다. 위상과 거리에 따라 화성에서 본 지구의 겉보기 등급이 달라지는데, -2.5와 0.9 사이이다.

ⓒ. space.jpl.nasa.gov
요즘은 지구가 새벽에 뜬다. 대략 새벽 4~5시정도다. 이 시간대에는 내가 가장 부지런했던 고등학생때에도 매일 자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며칠간 지구를 볼 수 있는 시간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고, 일주일 후엔 저절로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구가 창문을 통해 보이고, 창문이 침대 옆에 있기 때문에 새벽에 지구를 슬쩍 확인하고 관측로그를 대충 적은 뒤 다시 자면 된다. 지구를 보는 김에 그 쪽으로 손가락 하트도 하나 날려 준다.
글 이수빈 (qlstn6@gmail.com)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Darian_calendar
http://www.planetary.org/explore/space-topics/mars/mars-calendar.html
http://mars.nasa.gov/maps/explore-mars-map/fullscreen/
https://en.wikipedia.org/wiki/Timekeeping_on_Mars
https://en.wikipedia.org/wiki/Astronomy_on_Mars
http://earthsky.org/space/mars-north-south-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