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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사실은 페르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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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지동설을 제창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퀴즈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이 문제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은 흔히 답으로 ‘코페르니쿠스’를 말할 것이다. 실제로 위의 문제는 정답이 ‘코페르니쿠스‘ 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류가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폴란드의 천문학자이자 성직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것은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일까?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의 모습 / aristotle University of Thessaloniki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의 모습 / aristotle University of Thessaloniki

그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310 BC – 230 BC)라는 고대 그리스 사람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으며, 해와 달의 반지름과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해도 아리스타르코스의 가장 큰 업적은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것이다. 아쉽게도 이에 대해 아리스타르코스가 저술한 문서는 전해 내려오지 않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책에서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리스타르코스는 해의 반지름을 계산하였는데, 이 계산에 의하면 해의 크기는 지구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도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영웅전]의 작가인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이러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을 지지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은 그 당시의 대세였던 천동설을 밀어내지 못하고 점차 잊혀지게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지동설에 대해 그렇게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지동설에 대해 그렇게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지동설이 다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오게 된 것은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집필하면서였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착안하게 된 계기는 아직 불명확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추측 중에서,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을 먼저 접한 뒤 지동설을 착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동설 최초 주장의 지위는 아리스타르코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지동설은 이단!?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하고 여러 사람들이 지동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단숨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설이 되었을까? 우리 모두 지동설이 처음에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종교와 관련하여 많은 화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딱히 자신의 학설에 의해 크게 피해를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그가 죽은 이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자마자 종교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코페르니쿠스가 교회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서문 덕분이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의 서문을 쓴 사람은 안드레안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1498 – 1592)라는 목사였는데 종교와의 마찰을 두려워하였기에, 서문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단순히 계산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 서문을 접했다면 화를 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러한 오시안더의 배려덕분에, 몇몇 종파에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가르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별 탈 없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지동설이 종교 측에서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동설이 그 동안 널리 받아들여지던 천동설을 밀어내진 못했다. 종교적인 이유도 아니라면 왜 그랬던 것일까? 제일 간단한 이유라면 굳이 지동설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동설은 예전부터 널리 사람들이 받아들이던 학설이었다. 하지만 이런 천동설도 여러 위기를 겪었는데, 바로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역행 현상이란, 밤하늘의 행성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반대가 되는 현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바로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y, 90 – 168)이었다. 그는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천동설을 만들었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우리 우주의 모습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부정하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화성의 역행 현상, 역행 현상은 천동설을 위기에 빠트리기도 했다. / NASA APOD
화성의 역행 현상, 역행 현상은 천동설을 위기에 빠트리기도 했다. / NASA APOD

 

지동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첫 번째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가져온 주전원의 개념을 코페르니쿠스도 사용하였는데, 재밌게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들어간 주전원의 개수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쓰인 주전원의 개수보다 더 많았다. 두 이론을 부정하는 증거가 없다면 보다 더 간결하고 간단한 이론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을까?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자신의 지동설을 관측 결과와 비교해보니 많은 오차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오차를 없애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주전원을 도입했던 것인데, 이 오차의 원인은 코페르니쿠스가 행성의 궤도를 원으로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지동설이 보다 더 단순해진 것은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 – 1630)의 공이 컸다. 케플러는 케플러의 법칙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중 제 1법칙이 바로 행성의 궤도는 타원 궤도라는 것이었다. 케플러의 주장대로 타원 궤도를 도입한 결과 지동설은 훨씬 더 간단해질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위)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아래)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했다. /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Nicolaus Copemicus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위)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아래)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했다. /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Nicolaus Copemicus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지동설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연주 시차’라는 현상 때문이었다. 연주 시차는 시간에 따라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만약 지구가 어느 한 점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옛날부터 많은 천문학자들은 만약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이 연주 시차가 관측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 연주 시차를 관측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많은 천문학자들이 지동설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연주 시차가 관측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별들이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Proxima Centauri의 연주 시차는 0.7687초밖에 되지 않는다. 연주 시차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 작게 측정되는데, 별들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연주 시차를 측정하기에는 그 시대의 기술로는 무리가 있었다.

재밌게도 아리스타르코스도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연주 시차가 관측되지 않는 것에 대해 별들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통찰력이 새삼 돋보이는 대목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니동설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동설의 형태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케플러의 공이 크다 / Johannes Kepler 1610, 작자미상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동설의 형태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케플러의 공이 크다 / Johannes Kepler 1610, 작자미상

우리는 지동설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긴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이름 앞에,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상식이라고 해서 안주하지 않고, 이를 더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놀라운 발견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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