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원전 3만 년 전, 오늘날의 스페인 지방에 살던 크로마뇽인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횃불을 비추며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붉은색, 검은색, 황토색의 천연염료로 채색된 들소들은 바위의 요철과 어우러져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라스코 동굴 벽화는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에게 전해졌고, 우리가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과 주술 문화, 사냥 기술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Paintings discovered in the Lascaux Caves, a cave complex in southwestern France, on September 12, 1940. Described as the "prehistoric Sistine Chaple"
Paintings discovered in the Lascaux Caves, a cave complex in southwestern France, on September 12, 1940. Described as the “prehistoric Sistine Chaple”

우리 우주에도 동굴 벽화처럼 우주의 옛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이 있다. 다만 크로마뇽인의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적어도 허블 우주망원경 급의 최첨단 관측 장비가 있어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밤하늘의 어두운 부분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에 그려진 이 그림들을 만나보자.

멀리 볼수록 오래된 별을 만난다.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SOS 메시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메시지를 구조대가 발견했다. 유리병 속 메시지가 일정한 속도로 떠내려 온다고 할 때, 병이 흘러온 시간을 계산하면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병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보낸 메시지이기 때문에 지금 그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다.1) 하늘에서 오는 별빛은 우주공간을 수만, 수백만 년의 시간을 지나서 드디어 지구에 도달한 빛이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km로 일정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별에서 온 빛일수록 지구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더 먼 과거의 정보가 담겨있는 것이고,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별의 생사 즉 현재의 상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한 사진 속에 함께 찍혀있는 별빛이라도 서로 다른 세월을 날아온 빛 정보들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우주 사진 한 장은 우리 우주의 과거와 과거의 과거, 과거의 과거의… 과거 모습이 담겨있는 시간의 박제이다. 이 켜켜이 겹쳐져있는 시간들에서 오래된 (멀리 있는) 천체들은 검은 하늘 배경에 묻어있는 먼지나 점 하나, 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검은 하늘 그 자체로 보인다. 때문에 천문학자들이 계속해서 우주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별빛을 잘 모을 수 있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발사되기 이전까지 천문학자들이 볼 수 있는 가장 먼 은하는 약 70억 년 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70억 년 정도는 우주 스케일로 봤을 때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초창기에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진화했는지 알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더 멀리 보는 망원경’이라는 천문학자들의 타임머신을 타고 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2

허블 딥 필드 (Hubble Deep Field, HDF) 1996

: 하늘의 어두운 부분에는 무엇이 있을까?

 

허블 딥 필드는 항성도, 은하도 없는 듯 보이는 북두칠성 근방의 검은 하늘을 10일에 거쳐 촬영해서 얻어진 사진이다. 사실 누구도 그 영역에 이렇게나 많은 은하들이 빛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이 큰 허블 딥 필드 프로젝트는 폐기될 위험에까지 처했었다. 하지만 촬영 결과 70억 년 전의 밝은 은하부터 120억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희미한 점 하나까지, 이 보름달 지름의 30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영역에만 적어도 2000개 이상의 은하가 발견되었다. 사진 속 은하들의 개수, 모양, 색을 보면 초기 은하들의 밀집 정도, 형성 당시의 우주 환경, 은하를 구성하는 항성의 특징에 대해 알 수 있다. 또 이 아름다운 사진에서 우리가 밝게 빛나는 은하들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은하들 사이의 얼룩덜룩한 부분이다. 그것은 저 멀리에서 오는 은하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미약하게나마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며 이 신호들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후속 연구들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블 딥 필드 남쪽(Hubble Deep Field south) 1998
: 과연 반대 방향의 하늘을 찍었을 때도 비슷한 사진이 나올까?

 

허블 딥 필드 사진이 천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하지만 워낙 좁은 영역을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사진 속에 수많은 은하들이 등장한 것이 그저 우연히 은하가 몰려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면?’ 그래서 천문학자들의 망원경은 남쪽 하늘로 향했다. 만일 이번에도 비슷한 사진을 얻는다면 우주 전체에 은하들의 분포가 특별한 방향성 없이2) 균일하다3)는 빅뱅 우주론의 기본 원리 (Cosmological Principle)와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반대로 은하가 거의 발견되지 않거나 너무 많이 발견되면 지금껏 과학자들이 주장하던 우주론이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의미가 된다. 다행히 남반구 큰부리새자리 근처의 어두운 하늘을 허블 딥 필드와 동일한 촬영 시간, 동일한 크기의 영역에 대해 촬영 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Hubble Ultra Deep Field 2014 / credit : NASA, ESA, H. Teplitz and M. Rafelski (IPAC/Caltech), A. Koekemoer (STScl), R. Windhorst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Z. Levay (STScl)
Hubble Ultra Deep Field 2014 / credit : NASA, ESA, H. Teplitz and M. Rafelski (IPAC/Caltech), A. Koekemoer (STScl), R. Windhorst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Z. Levay (STScl)
허블 울트라 딥 필드 (Hubble Ultra Deep Field, HUDF) 2004, 2009, 2012, 2014
더 익스트림 딥 필드 (the eXtreme Deep Field, XDF) 2012

북쪽과 남쪽의 허블 딥 필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확실해지자, 천문학자들의 망원경은 멀리 있는 은하를 찾기 위해 더 깊고 더 어두운 우주로 향했다. 허블 울트라 딥 필드는 화로자리 근처에 보름달 직경 10분의 1 정도 크기의 영역을 촬영한 사진이다. 2004년 가시광선 촬영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촬영이 적외선 파장대로 확장되었고, 2012년에는 추가 관측 결과를 통해 그때까지 발견된 은하들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 7개를 발견해낸다. 가장 최근인 2014년 6월에는 가시광선, 근적외선에 자외선 관측 결과까지 더한 이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적외선 관측 결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적색편이의 영향으로 붉어지다 못해 적외선 영역으로 넘어간 은하들4)을 보여주며, 자외선은 주로 갓 태어난 뜨거운 별들에서 방출되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통해 초기은하의 형성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

허블 울트라 딥 필드의 확장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익스트림 딥 필드는 같은 영역을 10년 동안 촬영한 사진들을 모은 결과로 132억 년 전의 우주를 보여준다.5) 지금도 천문학자들은 100m 달리기 기록 단축에 도전하는 육상 선수들처럼 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딥 필드 관측은 허블 망원경이 이룬 성과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진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하늘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오래된 우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경계는 계속해서 넓혀질 것이다. 또 이와 함께 우리가 허블 딥 필드 프로젝트에서 주목해야 할 성과는 이 이후 달라진 천문학자들의 모습에 있다.6) HDF를 촬영한 연구팀은 모든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HDF 관측 데이터를 공개했다. 이때까지는 학자들 간에 중요한 연구 결과와 관측 데이터들을 지적 재산권의 이름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연구팀의 획기적인 행동은 학계 전체를 변화시켰다. 많은 연구자들이 HDF 결과를 인용해서 후속 연구를 이루어냈고, 천문대들은 HDF 영역을 관측한 다른 종류의 데이터들을 서로 공유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믿음과 협력으로 우주의 비밀을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1)우주라이크 네모난 천문학 #8 ‘시간을 달리는 별빛’ 참조.
2)등방성(isotropy) :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아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3)균질성(homogeneity) :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4)우리은하와 다른 은하단에 속해있는 은하는 관측자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빠르게 멀어지기 때문에 적색편이가 크다.
5)HUDF나 XDF 같은 딥필드 관측 이미지는 파노라마 사진처럼 여러 장의 사진을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도록 촬영 한 후 합성한 사진이다.
6)Jeff Kanipe, 『허블의 그림자』, 지호 출판사 p34-35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