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묻지 마세요.

    0 3187

    대학에 와서 소개팅이나 미팅을 할 때마다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상대의 얼굴을 처음 확인할 때도,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할 때도 아니다. 바로 나의 전공 “천문우주학”을 소개하는 순간에 이상하게 긴장 이 된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전공 소개 공포증”. 아직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천문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 미지는 밤새 망원경을 보고 별자리를 보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별자리와 관련 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릴 때 대유행이었던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책조차 본 적 없는 나로썬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어떤 신이 누구와 결혼했으며, 누가 어떤 괴물과 싸웠는지 난 전혀 알지 못한다. 신화 속 별자리조차 모르는 천문학도의 모습에 실망한 상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당연히 밤하늘을 보는 것이 직업인만큼 우리에게 별자리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별자리는 아주 오래 전 양을 몰 고 다니던 고대 양치기들의 잉여로움 덕분에 만들어졌다. 밤마다 심심했던 양치기들은 별들을 선으로 이어가며 동물이나 신화 속 등장인물 등 재밌는 모양을 그리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떼웠다. 여러 문화권에서 각자의 다 양한 별자리들이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하늘을 통틀어 유럽식 88개의 별자리를 국제 기준으로 사용한다. 오랜 세월 동안 별자리의 모양과 별자리들의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설화가 전해졌고, 별자리를 가지고 운명을 점치 는 등 세상 속에서 별자리는 꽤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와 관련된 신화나 옛날 이야기들이 재밌기는 하다. 하 지만 당연히 과학을 근거로 한 역사는 아니기 때문에,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 빼고는 우리들도 그다지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왼쪽 빨간 지붕 집

    어두운 하늘에서 별자리를 척척 찾아내며, 멋지게 그와 관련된 전설을 술술 읊는 모습이 천문학자에 대한 환상 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작 들려줄 수 있는 건 지루한 물리학 강의 뿐. 그렇다면 과연 천문학자에게 별 자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별자리 그 자체의 모양이나 담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별자리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 보이는 밤하늘에서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어떤 천문현상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서는 천체의 위치를 설명하는 서로 약속된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허공에는 어떤 기준선이나 표시를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활용하는 것이 바로 별자리이다.

    어떤 마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는 눈에 잘 보이는 학교나 우체국같은 큰 건물들을 기준으로 길을 설명한 다. 정확한 주소명을 그대로 불러주는 것보다, “초등학교 왼 쪽 빨간 지붕 집“ 이런 식의 설명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그 초등학교가 언제 지어졌고, 학생들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는 길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도 중요 하지 않다. 별자리는 이런 초등학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오리온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에서 어떤 천체 현상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때 오리온 자리의 모양이나 신화는 필요 없다. 단지 오리온 자리가 하늘의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알면 된다. 88개의 별자리들은 인위적으로 그어 진 직선으로 나뉜 각자의 영공을 갖고 있다. 마치 서방국가들이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처 럼, 단순히 편의를 위해 별자리들의 영역은 어색하게 나뉘어있다. 각자의 칸 안에 놓인 별들은 그 별자리의 별 이 된다. 하늘에 놓인 희미한 천체들까지 위치한 별자리 이름 뒤에 순서대로 알파벳이나 숫자를 붙여가며 그 천체의 이름을 정한다. 그 덕에 나중에 다른 사람이 다시 천체를 찾을 때 하늘 전체를 훑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천문학자에게 있어서 별자리라는 것은 복잡한 우주 지도에서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큰 관 공서인 셈이다.

     

    그림2

    그림3a

    hand

     

     

    별자리보다 정확한 기준

    하지만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초등학교 왼 쪽 빨간 지붕 집”이라고 쓰지는 않는다. 도와 시군, 읍면동의 이름과 도로명, 번호가 포함된 긴 주소명이 분명히 있다.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은 위치를 대충 설명할 때는 간편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집의 위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만일 정확한 그 지점의 주소명을 알고 있다면 단순히 네비게이션에 그대로 입력만 해서 위치를 정확히 집어낼 수 있다. 천문학자들도 별의 위치 를 대충 설명할 때는 별자리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국제적으로 약속된 하늘의 주소명 규칙을 사용한 다. 밤하늘은 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불변 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적도와 춘분점이다.

    지구상에서의 위치를 정확히 표현할 때는 위도와 경도를 쓴다. 위도는 그 지점이 지구 적도(위도 0도)에서부터 얼마나 위아래로 떨어져 있는지, 경도는 경도 0도 기준선(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부터 동서로 얼마나 떨어 져 있는지를 의미한다. 지구에서 위도의 기준 “적도”는 남반구와 북반구를 가르는 기준 선으로 멕시코, 인도 등 더운 나라들이 따라 놓여진 큰 원이다. 그리고 경도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세로 선을 경도 0 도로 약속하여 잰다.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별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표현할 때는 하늘에서의 가로 세로 각도, 위도와 경도를 사용한다.

    지구의 적도를 하늘 끝까지 확장했다고 했을 때 그려지는 하늘에서의 가상의 선, 둥근 하늘의 남쪽 절반과 북 쪽 절반을 가르는 선을 “하늘의 적도”라고 정의한다. 별이 그 하늘의 적도로부터 얼마나 위 아래로 떨어져 있 는지를 각도로 재서 위치를 표현한다. 이것을 하늘의 적도를 기준으로 한 위도라는 뜻으로 “적위”라고 한다. 하늘의 적도보다 위에 있으면 +각도를, 아래에 있으면 –각도를 사용한다.

    별이 하늘의 동서 방향으로 어디에 있는지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그리니치 천문대처럼, 하늘에서도 가 상의 점을 기준으로 약속했다. 3월 23일 춘분날, 태양이 있는 방향을 춘분점이라고 한다. 이 점은 실제 하늘에 있는 별은 아니지만, 그 방향을 따라 놓인 가상의 점을 기준으로 하늘에서의 동서 위치를 표현한다. 춘분점을 기준으로 별이 있는 곳까지 반시계방향으로 각도를 재서 별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표현한다. 이것을 하 늘의 적도를 기준으로 한 경도라는 뜻으로 “적경”이라고 한다. 적경은 360도 한바퀴를 24시간으로 표현하는 시간 단위를 사용한다.

    이렇게 정의된 하늘의 적도를 기준으로 한 적경과 적위로 별의 주소를 정확하게 나타낸다. 대부분 천문학에서 는 별의 위치를 쓸 때 별자리만 사용하기보다는 적경과 적위 체계를 더 자주 사용한다. 사람이 정의한 하늘의 적도와 춘분점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지 않고 계속 하늘의 같은 곳에 놓여있기 때문에, 적도 좌표계는 시 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통하는 좋은 약속이 된다. 이렇게 정확하고 좋은 주소 표기 방식이 있다보 니, 정작 천문학자들은 별자리를 잘 쓰지 않는다. 실제로 정말 유명한 별자리가 아니면 88개 모든 별자리의 위 치와 모양을 다 알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은 관측할 때 사람이 직접 하늘을 보며 별을 조준하지 않고, 컴퓨터 에 좌표만 입력하면 알아서 그 방향을 향해 렌즈를 돌리기 때문에 더욱 더 별자리 암기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 다.

    천문학자에게 있어 별자리의 가장 큰 의미는 단순한 길잡이, 내비게이션일 뿐이다. 내가 별을 찾는데 방향만 제시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천문학자는 별자리 주인공들의 각 스토리가 딱히 궁금하지 않다. 물론 개인 취미에 따라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천문학자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고 퀄리티의 안드로메다 공주의 이야기와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을 천문학과 사람에게 크게 기대는 하지 말자. 차 라리 그리스 신화를 전공한 사학과 학생이 나보다 더 재밌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안드로메다 공주 의 슬픈 사연은 필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공주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그것 뿐.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당연히 전공 수업에서 별자리학을 별도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관측 시스템도 모두 컴퓨터로 자동화 되면서 더더욱 별자리 같은 부분은 천문학자에게서 멀어졌다.

     

    그림5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