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의 별
신화 속 사건의 재구성
고대의 신화나 전설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근대 이후 꾸준히 이어져왔다. 부족한 물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한민족의 원류로 추정되는 환국(還國)과 배달국(倍達國), 중국에서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국가인 하, 은, 주 세 나라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서양의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 역시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와 대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접한 트로이 전쟁이 사실임을 입증하고자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굴에 평생을 바쳤다.(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트로이를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트로이라 믿었던 유적이 트로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죽기 몇 년 전에 밝혀졌다.) 하물며, 기독교와 유대교의 최고 경전이자 서양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성경 역시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역사로서의 사실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많은 학자들과 종교인들에게 연구되고 있다.
베들레헴의 기적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베들레헴의 별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서기 0년, 오늘날의 요르단 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근처를 지나던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의 상공에 떠오른 메시아를 상징하는 별을 보고 그의 탄생을 경배하고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고 한다. 예수 탄생 이후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별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다양한 역사적, 과학적, 천문학적 근거를 토대로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신빙성 있고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다양한 추측과 가능성
우선 베들레헴의 밝은 별의 정체에 대하여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측들을 모아서 연대순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12년 헬리 혜성
기원전 7년 5월 29일/9월 29일/12월 4일 물고기자리에서 생긴 목성, 토성의 결집
기원전 6년 2월 20일 물고기자리에서 화성, 목성, 토성, 달이 매우 가까이 모임
2월 21 ~ 25일 달을 제외한 세 행성의 삼중합(세 행성이 겹쳐 보임)
기원전 3년 8월 12일 금성과 목성의 합(두 행성이 겹쳐 보임)
기원전 3~2년 세 번에 걸쳐 일어난 목성과 레굴루스의 합(BC3 9월 15일/BC2 2월 17일/모름)
기원전 2년 6월 17일 금성과 목성의 합
※ 붉은 글씨로 표시한 내용은 연도와 월만 표시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직접 시뮬레이션을 실행하여 정확한 날짜까지 맞춰 표기한 것이다.
천문학자 마크 키저는 그의 저서 ‘천문학자의 관점에서 본 베들레헴의 별’에서 베들레헴의 별로 인정할 수 있는 천문 현상의 조건으로 다음 여섯 가지 근거를 내세웠다.
1. 대략적으로 추정되는 예수의 탄생 시기와 일치해야 한다.
2. 유일하고 특별하며 인상적인 현상이어야 한다.
3. 드문 현상이어야 한다.
4. 동방박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5. 동쪽에서 나타나야 한다.
6.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위의 현상들을 살펴보자.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화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스크로베리 교회당에 그린 벽화 ‘동방박사들의 경배’에는 요셉과 마리아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혜성이 그려져 있다. 아마 그는 자신이 1312년에 직접 목격한 헬리 혜성을 토대로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베들레헴의 별이 헬리 혜성이라면 예수는 기원전 12년에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황상 예수가 태어난 해가 실제 역법과 10년 이상의 오차가 나는 것은 다른 가설들의 주장에 비해 그 차이가 크다. 또한 동양의 관측 기록에 의하면 서기 1년을 전후로 2 ~ 3년 동안은 혜성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베들레헴의 별이 혜성이었을 가능성은 적다.
두 번째는 초신성이나 신성이었을 가능성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매우 무거운 별이 수명이 다했을 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아주 밝은 빛을 내며 폭발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 동양의 관측 기록에 서기 1년을 전후로 3 ~ 4년 간 초신성이나 신성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세 번째 가능성은 행성의 합 현상이다. 합이란 두 행성이 관측자의 시선과 일직선이 되면서 겹쳐 보이는 현상이다. 이 때 두 행성의 빛이 합쳐지면서 관측자에게는 평소보다 밝은 별로 보이게 된다. 이는 현재 학계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추측들이 이 현상으로 베들레헴의 별을 설명하고자 한다. 가령, 기원전 7년의 목성과 토성의 합을 살펴보자. 고대 바빌로니아 점성술에 의하면 목성은 왕이나 영웅과 관련이 있으며, 토성은 유대인의 수호자를 의미한다. 즉, 이 둘이 만나는 것은 유대인에게서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계산에 의하면 이 현상은 약 139년에 한 번 있는 일이며, 목성과 토성이 하필 물고기 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무려 900여 년에 한 번 있는 일이다. 이를 처음 계산한 것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이다. 그는 1603년 목성과 토성이 겹쳐 보이는 모습을 관측한 후 시간을 거슬러 계산함으로써 기원전 7년에 두 행성이 물고기 자리에서 세 번이나 만났음을 알아냈다. 물고기 역시 기독교에서 의미심장한 상징물이다. 물고기의 그리스어(헬라어)인 ‘익튀스(ΙΧΘΥΣ)’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Ιησουσ Χριστοσ Θεου Υιοσ Σωτηρ)’이라는 문구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가설이 참이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유대인에게서 900년마다 한 번씩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상은 성서나 종교적인 상징의 특정 부분을 과학적으로 풀이하고자 하는 시도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다루지 않겠다. 다만, 이처럼 베들레헴의 별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모두 저마다의 다양한 종교적, 과학적 근거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기 예수가 올려다 본 하늘
예수가 탄생하던 날 베들레헴의 하늘에서 밝게 빛나던 별의 정체를 둘러싼 여러 의견들을 살펴보았다. 수많은 학설들을 분석한 결과 예수가 태어나던 당시 매우 밝은 천문 현상이 발생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 현상이 그저 유난히 밝은 천체인지, 여러 행성이 겹쳐 보인 것인지, 아니면 초신성과 같은 보기 드문 천문 현상이었는지 확실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예수가 태어나서 처음 바라본 그 날의 밤하늘을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재밌는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다음 책들을 찾아보세요.
마크 키저, ‘천문학자의 관점에서 본 베들레헴의 별’
마이클 몰나, ‘베들레헴의 별 – 동방박사의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