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한 시사 방송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찾는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에 대한 비밀이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작은 상품을 하나 하나 낱개로 여러개 구매하는 것보다는 같은 상품의 더 커다란 사이즈 하나를 사거나 묶음 상품으로 나온 것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나도 마트에서 과자를 구매할 때면 작은 것들 여러개를 사기 보다는 커다랗게 묶여있는 ‘묶음 상품’에 손이 간다. 또 우린 이 것이 아주 합리적이고 똑똑한 소비라고 생각해왔다.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해오던 것이 정말 사실인지 굳이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트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그 ‘호기심의 부재’를 역이용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알려준 사실은 아주 충격이었다. 햇반 5개를 따로 사는 것이 5개 묶음 상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으며, 이런 현상은 과자, 샴푸 등 장르를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히 훨씬 저렴할 것이라 생각하고 집었던 묶음 상품은 오히려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던 대형 마트의 속임수였던 셈이다.

우리가 그동안 속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런 가격 책정의 근거가 대체 무엇일까라는 점이다. 3,000원 짜리 과자 5개가 모이면 15,000원. 한꺼번에 포장하는 대형 상품은 용기값이 더 줄어드니까 이보다 저렴하겠다 여기는 것이 훨씬 상식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가격이 내려가기는커녕 오히려 15,000원보다 비싼 17,000원에 판매된다는 것. 대체 이 2,000원의 출처는 어디일까? 마치 대형 상품 포장지 안에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투명한 과자 조각’ 몇 개가 더 들어가있기라도 한걸까? 모두가 알고 있던 상식이 깨지는 순간. 놀랍게도 이런 ‘투명한 조각’들의 장난질은 우리은하, 우리 우주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자 조각”
태양과 같은 별들도 혼자 덩그러니 암흑 속 공간을 헤엄치고 있진 않다. 별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곁에 다른 별들과 함께있고 싶어한다. 마치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하늘에 화려한 패턴의 얼룩을 그려내듯, 우주의 별들도 함께 무리지어 화려한 군무를 춘다. 별 수억개가 모여있는 이 군대를 ‘은하(Galaxy)’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군대 조차 우주 전역에 수억 부대 이상이 존재한다. 과거 천문학자들은 각 군대의 사이즈와 밝기를 통해 안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지를 추정하고 이들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은하들의 위엄을 측정하고 정리하던 중, 1932년 어느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별 자체만 해도 엄청 강한 중력을 뽐내는 질량 돼지이다. 그런데 이런 놈들이 떼로 모여있는 은하라면 그 부대가 뽐내는 중력은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중력을 통해 그 중력을 뽐내는 주인공의 몸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 계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은하는 얼마나 무거운 군대인지 계산하게 된다. 그런데 이전에 우리가 알고있던 은하의 몸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값을 얻었다. 은하를 이루는 별들 각각의 무게를 합한 값보다 은하 전체는 훨씬 더 무거웠던 것이다. 마치 별 각각을 합한 것보다 별을 묶음 상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훨씬 더 값이 많이 나간 셈. 그리고 이런 질량의 오차는 다른 은하들에서도 발견된다.

별 + 별 + 별 + 별 … = 은하
별질량 + 별질량 + 별질량 + 별질량 … <<< 은하질량   ?

여기서 우린 대형 마트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혼란에 봉착한다. 대체 이 ‘더 무거움’의 출처는 어디란 말인가? 왜 눈에 보이는 별들의 질량의 합보다 은하는 훨씬 더 무거워야만 내뿜을 수 있는 중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이 마법의 정체는 첫 질문 이후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은하에 양념되어있기 때문에 은하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뚱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 보이기에는 다윗인데 그 은하의 중력은 골리앗이다.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말랐지만 체중계에 올라가보니 훨씬 뚱뚱한 ‘마른 지방’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의사들은 그것이 피부 밑에 숨어있는 ‘내장 지방’의 장난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쉽게도 우주의 ‘내장 지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그냥 속편하게 눈으로 볼 수 없는 깜깜한 질량, ‘암흑 질량 (Dark Matter)’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뭔지 모른다는 말을 매우 멋있게 의역한 셈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정체도 모르는 암흑 내장 지방이 우주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들이 속삭이는 중력적 외침을 측정하여 그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공간 지도를 그려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금속막대 한쌍만 들고 땅 밑 수맥의 지도를 그려내는 듯한 이 미신같은 이야기를 우주론적인 풍수지리학이라고 봐도 될 듯 싶다. 하지만 이 암흑 질량은 분명 존재한다.

사실 이 암흑 질량이 없었다면 우리은하, 그 속의 태양, 나아가 그 주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암흑 질량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한 중력을 뽐내며 주변의 물질을 모아 반죽할 수 있는 좋은 기틀을 마련해주는 아주 중요한 양념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태어나던 날 빅뱅이라는 대폭발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반죽이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반죽은 점점 더 넓고 옅게 퍼져나가며 거대한 도우(dough)가 되어 그 위에 갖가지 토핑과 양념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다. 우린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이미 도우가 펼쳐질 때부터 그 위에는 아주 무거운 양념들이 곳곳에 뿌려져있었다.

태초에 암흑 질량이라는 양념은 고칼로리의 아주 무거운 성질 때문에 자기 주변에 다른 눈에 보이는 양념들까지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풀어진 양념 덩어리들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주변에 뽐내는 중력의 위력 역시 더 크게 성장한다. 피자를 구울 때 그 위 치즈와 토핑이 서로 엉겨붙어가며 더 커지고 성장하듯 우주 초기의 온갖 물질들은 서로 끌어당기며 더 큰 덩이로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우주 전역에 그물처럼 얽힌 복잡한 기본 골자를 만들어간다. 별과 가스로 이어진 그물 가닥과 가닥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아주 밀도 높은 매듭이 엉키게되고 이 매듭은 다시 더 둥글고 거대한 하나의 은하, 나아가 은하들이 뭉쳐있는 은하들의 군대까지 만들어간다. 우리은하 역시 수많은 이웃 은하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토핑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토핑 속 아주 작은 세계에 태양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그 희미한 빛을 받아 생명을 꽃피워낸 우리의 고향 지구가 있다.

illustris-gas-velocityImage credits: Boylan-Kolchin et al. (2009)

이런 암흑 물질의 유별난 ‘붙임성’이 아니었다면 대폭발 이후 허전하게 흩어졌던 우주의 각종 분자 물질들이 얽히고 설키는데 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빅뱅 이후 지금까지 약 140억년이 흐르는 동안 아직도 은하 하나 제대로 반죽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이 붙임성 좋은 암흑 물질들이 먼저 빠르게 뭉치면서 다른 일반적인 물질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주는 진작에 은하와 은하단을 만들었고, 그 은하 속에서 태어날 생명체들이 로켓을 쏠 수 있는 지적생명체로 진화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고대사는 오늘날 눈에 보이는 화려한 현대사를 이뤄냈다. 분명 우리는 이곳 지구에서 우주를 생각한다. 고로 암흑 질량은 존재한다.

“우리의 우주는 소리없는 아우성”
산에 올라가 울창한 숲을 바라볼 때면 우린 푸르르게 펼쳐진 나무들의 녹음과 알록달록한 꽃잎들의 장관에 가슴을 맡기곤 한다. 종종 우리 시선을 스치고 빠르게 지나가는 청솔모들 역시 우리의 혼을 빼앗는다. 하지만 그 거대한 숲을 이루기 위해 고생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은 쉽게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걸어왔던 등산로 흙길을 따라 그 밑에서 숨죽인체 기어다니는 수많은 작은 벌레들과 미생물들은 나무 찌꺼기들이 다시 새로운 나무로 부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마법사들이다. 나뭇잎을 간지럽히며 시원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산들바람의 존재 역시 눈으로 직접 바라 볼 수 없다. 귓가를 맴도는 아기새들의 지저귐도 귀를 통해 그 존재를 유추할 뿐 우리가 눈으로 하나 하나 그들의 깃털과 부리를 확인할 방도는 없다. 산에 올라 온갖 인증샷과 추억을 머리에 담고 오더라도 우리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정령으로 산은 가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정령들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녹음을 일궈낸 진짜 산의 조상인 셈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한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대천문학에 따르면 태양과 같은 눈에 보이는 반짝이는 것들은 우리 우주 전체 물질의 4% 뿐이다. 남은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주가 태어나던 날부터 함께 했으며, 그들에 의해 우주 전체 역사가 좌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또 그들에 의해 생명이 파괴된다. 우주는 고요하다. 하지만 매순간 격렬한 태동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소리없는 아우성들. 하지만 우린 이 시끄러운 소음을 듣지 못한다. 다만 아우성들이 모여 만든 작은 속삭임만 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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